가끔은 혼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간다 메모선장의 수요잡설

세상에 아이스크림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아이스크림을 싫어하고 그따위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세상 어딘가에 사랑과 평화를 증오하고 공해와 파괴를 즐기는 사람도 있듯이.

아무튼 나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아이스크림이라는 건 참으로 멋지다.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아이스크림으로 먹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다. 물론 그따위 식생활을 했다간 오래지 않아서 당뇨나 고지혈증 따위에 걸리겠지만, 그래도 기분을 더 낫게 만드는 데는 밥보다 효과가 좋은 것 같다.

아이스크림을 언제부터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대략 12년 전 쯤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 알던 선배 중 한 명이 배스킨라빈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에 굳이 거기까지 찾아간 적이 있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상품을 자기 맘대로 내주거나 값을 깎아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선배는 요령좋게 몇몇 제약을 피해서 가능한한 많은 아이스크림을 주었고, 나는 신나게 얻어먹었다(지금 생각해보면 본인이 전부 계산한 건 아닌가 싶다). 우리집에서 그 점포까지는 대략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이 정도로 호사를 누릴 수 있다면 두 시간이 걸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무더운 여름에 한적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원하는 맛을 골라먹으며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그만한 호사도 없을 것이다. 정말이지.

그리고 그 이후로는 데이트 중간에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는 일이 많았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콜드스톤이었다. 이곳은 원하는 재료를 고르면 아이스크림을 차가운 돌판 위에서 재주좋게 뒤섞어서 과자 그릇 위에 담아주는데, 그때그때 원하는 재료를 쫀득한 아이스크림에 섞어 먹는 맛이란 여간 훌륭하지 않았다. 조합에 따라 좀 느끼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군것질거리는 콜드스톤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이 콜드스톤이 몇 년 전에 한국에서 철수해버려서 더는 맛볼 수 없게 되었으니, 정말 국가적 재난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소박한 희망 하나를 상실한 셈이다.

아무튼 한국이 콜드스톤을 상실했듯, 그렇게 남 부러울 것 없던 나의 아이스크림 라이프도 인생의 암담한 골짜기를 만나면서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연애를 하지도 않고 긴축재정이 한도 끝도 없이 계속되니 그런 호사를 누리는 건 친구 생일 때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대학까지 떠나면서 아이스크림은 명절 음식보다도 가끔 먹는 음식이 되었다. 힘들어질수록 돈이 드는 즐거움을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그렇게 아이스크림 같은 건 영영 잊어버리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다행히 그렇지 않았다. 헌혈을 하고 외식 상품권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피 대 아이스크림이라니, 악취미한 성인용 동화에나 나올법한 얘기지만, 나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아무튼 헌혈 덕에 딱히 축하할 일도 없는데 혼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맛을 알게 되었다.

혼자서 먹는 아이스크림은 남과 같이 먹는 아이스크림과 어떻게 다른가? 물론 아이스크림 자체는 다를 게 없다. 똑같은 배스킨라빈스다. 하지만 배스킨라빈스를 혼자 먹으면 당연히 내가 먹고 싶은 맛만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 앉아서 그것을 먹는 동안 ‘내가 고른 맛을 왜 남들이 더 먹는 거람’ ‘남이 고른 맛인데 이렇게 많이 먹어도 되나’ 같은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입을 벌리고 슈팅스타가 튀는 소리를 음미하며 넋놓고 앉아있을 수도 있다. 그 시간만큼은 나도 느긋한 포식자가 되는 셈이다.

정기적으로 근사한 가게에서 아름다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인생의 한 국면에서 성공한 셈이다

이렇게 쓰긴 했지만, 최근에는 바빠서 또 그 맛을 잊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발상 자체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문화적 갱도에서 단어를 캐는 나날이 이어졌고, 나는 한여름의 파트라슈처럼 지쳤다. 그러던 어느날, 집에 가는 길에 문득 배스킨라빈스의 신제품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나는 어째서인지 마음을 사로잡혔다. 당분이 떨어진 뇌가 SOS신호를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 한참 망설인 끝에 가게 안으로 들어가 신메뉴를 포함해서 세 가지 맛을 사 먹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나마 좀 인간으로서 삶을 누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이래저래 고생은 하고 있지만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면 마냥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채찍 열 번 맞고 고작 당근 하나 받은 것에 불과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렇다고 루퍼트 그린트처럼 ’그래, 언젠가 반드시 아이스크림 트럭을 몰고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공짜로 나눠주겠어’ 같은 결심을 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가끔 지쳤을 때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은 할 수 있었다.

물론 의학적으로, 재정적으로 엄밀히 따져보면 아이스크림 따위 먹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하며 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입력과 출력을 한없이 반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같은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보상을 받아야 한다. 층계참이 없으면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겠지만 그런 계단을 한없이 오르다간 연골이 박살날 것이다. 요는 자신의 일상 어느 부분에서 어떤 보상을 받도록 설정해야 가장 효과적인지 연구하는 것도 삶의 중요한 과제인 셈이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도 종종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자신을 독려하고 있는데, 사람이란 역시 간사한 법이라 요즘은 설빙을 자꾸 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설빙은 일단 내가 오가는 길에 없고, 있더라도 고독한 미식가처럼 훌쩍 들어가 시간을 보낼 만한 점포가 아니다. 설빙에 가서 뭔가를 먹으려면 뜻이 맞는 팀이 조직되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술은 혼자서도 마실 수 있지만 좋은 아이스크림은 혼자 먹을 수 없다니, 역시 술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값진 보상일까?



덧글

  • 1월 2017/09/27 18:08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구매하기 직전까지는 늘 가격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가도 입에 넣으면 그런거 다 날려버리고 그저 기분좋아지죠. 강원도 구석이라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은 마트나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수준 정도지만 그래도 아이스크림은 참 좋습니다.
  • 메모선장 2017/10/04 12:21 #

    아이스크림은 오로지 행복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 아무리 저렴하고 흔한 것이라도 좋지요
  • 2017/09/28 01:2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10/04 12:2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Nora 2017/09/28 03:55 # 삭제 답글

    예전에 맥컬리 컬킨 주연의 이혼한 아빠의 집에서 잠시 살게되면서
    어쩌다 무슨 조건으로 베스킨라빈스에 가는장면이 나왔는데 그때는
    지금의 체인점 느낌이 아니라 31번지에 있는 동네 맛집 이라는 느낌이었던
    얼마전에 밀탑에서 혼자 계속 벼르던 못먹어본 딸기 빙수를 먹었는데 그 일탈감이란..
  • 메모선장 2017/10/04 12:22 #

    배스킨라빈스도 그렇게 소소하던 시절이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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