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나를 뜯어먹는다 메모선장의 수요잡설

이빨의 버릇이 영 잘못 들었다. 틈만 나면 나를 뜯어먹는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러브크래프트나 모파상의 공포 단편 소설 같지만, 이것은 내가 지금 당장 겪고 있는 문제다.

어찌된 일이지 엄지손톱 옆의 거스러미를 가만 놔두질 못해서 노트북을 앞에 두고 작업할 때면 반드시 앞니로 물어뜯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버릇을 꼭 이빨의 문제로 떠넘길 수만도 없는 것이, 거스러미를 뜯어먹는 사태의 발단은 이빨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자연적으로 손톱 옆에 미세한 거스러미가 생긴다. 이것은 도저히 피할 길이 없는 사태다. 그리고 그것을 눈으로 보든, 검지손가락으로 만지든 한 번 인식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검지로 긁어서 거스러미를 뜯어내기 시작하고, 당연하게도 이렇게 뜯어낸 거스러미 때문에 피부에 골이 생기면 두 배, 세 배의 거스러미가 발생한다. 하이드라처럼 하나를 잘라내면 둘이 돋아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슬슬 검지손가락으로 수습이 불가능한 상황이 온다. 쭉 찢다 보면 외피가 아니라 내피까지 찢어져 상당한 고통이 찾아온다. 이때 나서는 것이 바로 절단에 특화된 앞니다. 그러나 앞니가 손톱깎이나 니퍼처럼 날카로울 리가 없으니 앞니로 뜯어먹고도 검지손톱에 걸리는 부분이 남고, 이것을 손톱으로 뜯거나 이빨로 자르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 자기 파괴적인 청소 작업은 정말 손톱 옆이 엉망이 되어 일상 생활에 지장이 생길 때쯤에야 중단되는데, 오랜 인내 끝에 치유가 끝나면 이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책상 앞에서 손가락을 뜯어먹히고, 치유되면 다시 뜯어먹히는 형벌이 이어진다

심장을 뜯어먹히는 프로메테우스도 아니고, 이쯤되면 대체 뭐가 문제라 이런 짓을 지치지도 않고 계속하는 거지, 하고 나 스스로도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을 나름대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찰해봤는데, 나는 주로 손과 입이 바쁘지 않지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내 살을 뜯어먹는다. 가장 빈도가 높은 것은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뭔가 영 풀리지 않을 때고, 누군가에게 그다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장시간 들어야 할 때도 빼놓지 않는다. 즉 소설이든 수필이든 그것을 쓰는 데는 내 살점이 지불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부모님 잔소리를 들을 때도 회의를 할 때도 책상 밑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내 살점을 후비며 자학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무튼 혼자 있을 때야 내 살 좀 뜯어먹는다고 누가 뭐라고 할 일은 없지만, 잔소리를 들을 때 그런 짓을 했다간 상대의 화를 돋우기 마련이고, 회의처럼 중요한 순간에 몰래 손가락을 뜯고 있다는 걸 들키면 영 집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겠다 싶어서 대책을 강구했다.

일단 가장 단순한 것은 입술 각질을 뜯어먹는 것.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대책이 아니라 또다른 습관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입술을 뜯는 동안에는 확실히 손가락을 뜯지 않는다. 입술 각질을 뜯다가 진짜 살점까지 찢어지는 일은 거의 없는데다 요즘은 매운 음식도 먹지 않으니 피해도 적다. 하지만 이것도 권장할 만한 짓은 아닌 데다가 입술을 뜯지 않으려고 손가락을 뜯는 경우도 생기니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그래서 강구한 두 번째 대책은 엄지에 반창고를 붙이는 것인데,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이면서도 은근히 불편하다. 아무리 편안한 반창고라도 피부에 뭔가를 붙이고 다닌다는 건 성가신 일이라, 반창고를 붙이고 있으면 이물감 때문에 나도 모르게 검지로 그것을 긁어 떼기 시작한다. 반창고가 붙어 있는 이상 내 피부야 멀쩡하겠지만 성가신 것을 긁어대는 버릇은 더 악화될 우려도 있다.

그래서 반창고보다 나은 대안으로 나온 것이 엄지 첫째 마디에 반지를 끼우는 것이다. 이렇게 해두면 스페이스 바를 누르기가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나도 모르게 엄지에 검지를 가져갔다가도 반지만 만지작거리고 그만둘 수 있다. 반지야 어차피 엄지용으로 산 게 이미 하나 있는 데다가 그게 없더라도 외출할 때마다 끼는 게 있으니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고, 긁는다고 닳거나 떨어지지도 않는다. 이물감도 반창고와는 성질이 달라 만지는 빈도도 적으며, 성가시다 싶으면 빼면 그만이다. 참으로 환경 친화적인 방법이고, 실제로 이 방법을 써서 각질처럼 변할 지경이었던 엄지를 위기에서 구해낸 적도 있다. 같은 습관이 있는 분들은 한 번 시도해 보시길. 설마하니 반지를 이빨로 물어뜯는 분은 없겠지.

하지만 이 방법도 손버릇을 완전히 없애기에는 역부족이라 언제부턴가는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으면 한 발을 의자 위에 올리고 새끼발가락 옆의 각질을 피가 배어날 때까지 뜯어내기 시작했다. 딱히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아닌데도 가만히 영화를 보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손발이 피에 젖어 있다. 이런 짓을 하고 나면 한동안 걸을 때 아프기 때문에 반드시 그만둬야겠다고 몇 번이고 결심했지만, 새끼발가락에 반지를 할 수는 노릇이고 반창고는 간지러워서 붙이기 싫다.

그래서 최근에는 쓰지도 않을 펜을 가까이 두고 심심할 때마다 만지작거리거나 돌리기 시작했고, 아예 '피짓 토이'라는 물건까지 주문해버렸다. Fidget toy라는 이 물건은 말그대로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얼마 전에 정육면체의 각 면에 스위치, 번호식 자물쇠의 다이얼 따위를 붙인 물건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나와 대단한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내가 주문한 것은 그게 아니라 그냥 빙빙 돌리기만 하는 물건이지만, 나름대로 효과가 없진 않을 거라고 기대한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손발 대신 그걸 만지작거리겠지.

6종의 유희를 제공하는 혁신적인 피짓 토이. 이쯤 되면 손버릇과 상관 없이 갖고 싶다.


그런데 내 습관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아주 안타까운 사실은, 아무리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도 뭔가를 먹거나 하다못해 전자담배라도 피울 수 있다면 내가 내 몸을 쥐어뜯는 사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어릴 때 프로이트의 발달 단계 중 하나인 구강기에 이상이 있어서 구강적 욕구 분출이 손가락으로 발현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하다. 하기야 인생의 3분의 1 이상 엄마젖이나 담배를 빨면서 살았으니 아무 습관도 남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할지도. 아무튼 습관이란 참으로 무섭고 때로는 피를 부르는 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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