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보다는 아쉬웠던 어벤저스 2 감상 메모선장의 수요잡설







인기있는 대작을 보고 실망스러웠다고 하는 것은 분명 대단히 위험천만한 일입니다만, 어벤저스 2는 다소 실망스러웠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요. 재미가 없다는 게 아닙니다. 1에서도 그랬듯이 2에서도 수많은 캐릭터들의 비중을 잘 조절해서 재미있는 활극을 뽑아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1에 비하면 제 취향이 아니었고, 의문스럽거나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아무튼 이번엔 힘을 빼고 어벤저스 2 감상을 좀 적어보겠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고, 아쉬운 점 중심으로 얘기하게 될 겁니다. 


1. 바튼과 나타샤와 배너 

예,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바로 이 세 캐릭터의 관계였습니다. 시작하는 전투에서 바튼이 퀵실버 때문에 부상당하고 이걸 나타샤가 꼼꼼히 챙겨주죠. 그걸 보면서 역시 이 두 캐릭터 케미는 좋구나 생각했습니다. 1에서도 묘사되었듯이 이건 분명 동료애고, 이걸 보고 좋아하는 건 두뇌가 너무 핑크빛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학교에서도 동기사랑이 나라사랑이니 어쩌니 하면서 신입들이 서로 챙겨주게 만들고 그걸 보고 흐뭇해하잖아요? 두 캐릭터의 ‘케미’에 관한 감정은 딱 그 정도였습니다. 

(훈훈한 동지애를 보여줬던 1)

그런데 전투가 끝날 때 쯤 되니 팀이 헐크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라느니 어쩌느니 해서 나타샤가 아바타 비스무리한 느낌으로 헐크를 진정시키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여기서부터 의문이 생겼습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연구 끝에 드디어 헐크를 컨트롤하는 방법이 개발되었나? 싶었죠. 그리고 묘하게 껄끄럽게도 했습니다. 나타샤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긴 해도 슈퍼 히어로라고 하긴 능력이 약합니다. 수틀려서 헐크가 한대 치기라도 하면 피떡이 될 겁니다. 그런데 튼튼한 히어로들이 헐크 담당으로 나타샤를 배정했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2015년에 와서 킹콩이나 미녀와 야수 구도를 재현하는 걸로 보여 식상했습니다. 토르가 와서 형제여! 어쩌고 하면서 진정시키는 편이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죠. 뭐, 결국은 아이언맨이 헐크버스터로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습니다만.

아무튼 뒤이어 나온 파티 장면은 무척 좋았습니다. 히어로들이 임무 끝난 뒤 놀면서 스트레스 해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죠. 묠니르 들기 대회도 소소하지만 여러가지 재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타샤가 입이 벌어지도록 아름답게 나왔죠. 제가 본 것 중에서, 마블 시리즈뿐만이 아니라 다른 영화까지 통틀어 스칼렛 요한슨이 가장 예쁘게 나온 장면입니다. “언더 더 스킨”에서 스칼렛 요한슨의 나신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1억배는 아름다웠습니다. 아이언맨2도 좋았지만 그걸 권총이라고 치면 이건 핵폭발 수준이었어요. 어벤저스 2에서 가장 다시 보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바로 이 장면과 헐크버스터 둘입니다. 

(이때도 참 좋았죠)


그런데, 놀랍게도, 이 매력적인 나타샤가 배너를 꼬시더군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배너와 비슷한 심정이었죠. 장난치는 거겠지. 아니면 닉 퓨리가 또 무슨 이상한 명령을 내린 걸 거야. 하지만 스티브가 와서 못을 박더군요. ‘쟤 장난칠 때는 안 그래, 잘 해봐’ 라구요. 캡틴 아메리카 2에서 나타샤와 키스하고 키스를 잘 하니 어쩌니 했던 스티브가 그렇게 말하니 이건 확실히 믿을만한 얘깁니다. 그래도 전 믿으려 하지 않았죠. 믿을만한 근거가 없었으니까요. 앞에서 자장가 어쩌고 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거기선 애틋함 같은 걸 조금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다려보기로 했구요.

그런데, 좀 지나니까 이번에는 놀랍게도 행복한 바튼 가족들이 등장했습니다. 이건… 사기라고 생각했죠. 심각한 배신감이 느껴졌습니다.
-야, 너 엠티때 걔랑 괜찮아 보이던데 요즘 어때?
-걔요? 걔랑 그냥 친군데요. 그리고 걔 유부남이래요. 애들 귀엽던데요.
… 이런 느낌이었죠. 물론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멋대로 지레짐작한 쪽이 나쁜 놈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바로 이어서 나타샤와 배너가 진지하게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하는 건 너무했다고 생각합니다. 충격은 둘째치고 맥락을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전 뭔가 아주 중요한 영화 하나를 놓친 줄 알았습니다. 인크레더블 헐크를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나 싶었죠. 그런데 듣고보니 그것도 별 관련은 없다더군요. 즉, 이 케미는 어벤저스 2에서 시작되었다는 얘긴데,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역시 무리가 느껴졌습니다. 코믹스를 보면 충분한 설명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나타샤가 배너의 갈무리된 슬픔이나 강인한 다정함 같은 면모를 보고 끌리는 장면을 10초라도 넣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파티할 때 꼬시지 말고 편하게 술 마시면서, 캡틴 아메리카 2에서 차타고 갈 때 그랬던 것처럼 잡담이라도 했으면 수긍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아무튼 나타샤와 배너의 관계는 어벤저스 2에서 드라마를 담당하는 주축이었는데, 여기서 일단 실망해 버리니 개인적으로 영화의 반쯤은 몰입할 수 없었던 셈입니다. 외국에서 ‘마블은 최초의 여성 히어로를 만들어놓고 어쩔 줄 모르고 있다’는 칼럼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것도 이해가 가더군요. 전 나타샤=블랙위도우의 매력은 바로 엄청난 요염함, 다른 히어로들이 갖지 못한 스파이로서의 능력, 그리고 자신의 어두운 과거에 너무 사로잡히지 않으면서도 열심히 선의 편에서 일한다는 점, 자신의 매력을 완전히 인지하고 있으면서 그걸 주무기로 삼지 않는데다 누구에게 끌리거나 흔들리지 않는 멘탈의 강인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멘탈의 강인함이 우수수 무너졌죠. 물론 강인한 캐릭터가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드라마고 캐릭터의 매력이 되는 법입니다만, 어벤저스 2에서 이런 나타샤에게 닥쳐온 질풍노도의 시기는 굉장히 뜬금없는 것으로 느껴져서 매력적일 수도 있었던 얘기가 좀 요상하게 다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2. 울트론

(약해 너)

솔직히 말해서 울트론이 무서웠던 것은 그가 파티장에 처음 등장했을 때 뿐이었습니다. 폭주한 인공지능이 불완전한 육체를 가지고 창조주를 찾아간 장면이니까요. 프랑켄슈타인 이후로 이 소재는 끊임없이 재생산되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다만 그렇게 익숙한 소재인만큼 더 참신하거나 다이나믹하게 그려졌어야 하는데, 어벤저스 2는 별로 그렇지 못했습니다. 진화를 위해 인류를 멸망시키겠다는 건 사람들 말마따나 중학생도 할 수 있는 생각이죠. 따라서 그 결론을 얻기까지의 과정이나 논리라도 잘 나오길 바랐습니다. 요즘 무인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생각할 거리가 된 ‘고장으로 인해 자동차가 누군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때 어른 두 명과 아이 한 명 중 어딜 받을 것인가?’ 같은 류의 기계적 사고의 한계점 같은 걸 다루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창조주에 대한 초월 의지나 무한한 증오심, 혹은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 같은 엄청난 힘이라도 나올 줄 알았죠. 그런데 어느쪽도 심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나마 강조된 것이 '무한히 복제되고 인터넷으로 전송되어 절대 잡을 수 없는 생명력’ 인 듯 했으나, 그것도 애매했습니다. 디자인이나 유머 센스는 괜찮은 반면 본체(로 보이는 개체)는 아이언맨이 두들겨 패고 로켓 쏘면 터질 정도로 약하고, 그밖의 복제개체들은 존재감이라는 게 없다시피 했죠. 좀 심하게 말하자면 이것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어벤저스 멤버들이 베란다에서 이불 터는 게 더 박진감 넘치고 스릴 있었을 겁니다. 어벤저스 1에서 등장한 치타우리족들도 약하긴 했지만 얘네들은 민간인을 위협하기도 하고 리바이어던을 불러오기도 하고 광선총 일점사로 헐크마저 주춤하게 만들어 약한 떼거리임에도 성공적으로 위기감을 조성했습니다. 그런 반면 꼬마 울트론들은… 그냥 숫자만 많은 알루미늄 호일 인형 같았죠. 같은 숫자의 개나 고양이가 훨씬 위협적일 겁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를 어째’ 싶었던 적이 없어요.

아차, 그러고 보니 울트론은 인터넷으로 도망다닐 수 있었군요! 그런데 이 막강한 장점은 어떻게 되었죠? 비전이 날아와서 머리 잡으니까 ‘연결을 끊었구나, 비전!’ 하고 거세되었습니다. 누가 시간을 끌 때 토르가 번개로 지진 것도 아니고, 아이언맨이 EMP 충격파를 날려서 5분 간의 접속 제한 시간을 벌어 간신히 물리친 것도 아니죠. 그냥 피씨방 두꺼비집 내리는 것보다 더 쉽게 해결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비전 얘기로 빠지자면, 대한의 건아들 비전의 탄생은 꽤 흥미롭고 재미난 지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통제를 통해서라도 자기 같은 슈퍼 히어로 없이 평화가 유지되길 바라는 토니 스타크와, 인간의 근본적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스티브 로저스 및 동료들의 의견이 가시적으로 충돌하는 부분이었죠. 토니의 독단과 스티브의 팀웍이 부딪치기도 했구요. 시빌워로 이어지는 발판인 만큼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깊은 언쟁과 육탄전이 벌어지리라 생각했는데… 목욕하고 온 토르가 계시 받았다고 깨워버리는 걸로 끝나죠. 사실 전 토르가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이런 나쁜 것은 사라져야 해!’ 하고 때려 부수는 줄 알았습니다. 근데 산파였더군요. 그리고 그 난리 끝에 태어난 비전은 토니보다 토르를 더 잘 따르고 있으니… 토니는 자식복이 영 없는 것 같아서 짠합니다.

아무튼 울트론은 공감할 만한 신념도 없는 놈이 세지도 않고 숫자만 많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인류보완계획…이 아니라 반중력장치로 띄운 도시 하나를 추락시켜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인데, 이건 꽤 흥미로웠죠. 도시에 있는 사람들도, 그리고 지구의 인류도 구해야 한다는 문제가 설정되어 긴박감이 있었고, "백투더 퓨처 2"의 드로리안마냥 구세주 헬리캐리어가 등장하는 장면도 짜릿한 쾌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 해결은 그에 비해 통쾌한 맛이나 긴박한 맛이 좀 모자란 듯 했습니다. '아이언맨이 다 해주실 거야’라고 생각했더니 정말 그렇게 되었죠. ‘성공할 확률은 1%도 안 돼!’나 ‘빨간 줄? 파란 줄?’ 같은 뻔한 말이 잘 들어가지 않는 게 이 시리즈의 매력이고, 따로 떼어놓고 보면 별 문제가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역시 이게 다 빌런이 너무 나약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더군요. 울트론이 변신 합체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3.스칼렛 위치와 퀵실버

이 남매의 역할이나 비중에는 크게 아쉬운 것이 없습니다. 퀵실버의 최후는 석연치 않지만 이것저것 사정이 있었을 거고, 껄렁껄렁한 사고뭉치가 결국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얘기, 그리고 소심한 아이가 단짝을 잃고 각성한다는 전개도 왕도에 가까우니까요. 겁먹은 스칼렛 위치가 바튼의 말을 듣고 문을 나서서 성장하는 부분도 팀에서 유일하게 평범한 어른으로 느껴지는 바튼의 역할을 멋지게 강조해줘서 좋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묘하게 바튼이 돋보이는 영화였죠. 스칼렛 위치의 강대함은 어째 의문스럽긴 했으나 원래 매그니토 딸이라 그렇다니 그런가보다 합니다. 다만, 이 둘의 등장으로 빌런쪽의 무게 중심이 묘하게 흐트러지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그런데 영화 내용과는 별개로 스칼렛 위치의 복장은 좀더 화사하고 예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테레즈 라캥”에서  나온 엘리자베스 올슨을 제가 무척 매력적으로 본 탓일 겁니다. 아마도. 

그리고 스칼렛 위치가 손을 요리조리 놀리며 염력을 사용하는 부분을 보는 내내 그녀가 그린 스크린 앞에서 혼자 묵묵히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손을 놀리는 모습이 상상되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영화 메이킹 필름 같은 걸 뒤적이다 보면 이런 부작용이 있군요.


4.서울

서울은 정말 안 예쁜 도시군요.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만든 필름에서도 이 지경이라니, 말 다했죠. 보는 내내 합성물을 보는 듯한 위화감에 시달렸습니다.




어벤저스 2를 보고 나서 바로 1을 다시 봤는데, 그렇게 보니 1은 정말 잘 만들었더군요. 무엇보다 로키의 매력은 울트론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리 강해보이진 않지만 헐크가 걸레짝처럼 두드려도 죽지 않을 정도로 질기고, 남을 잘 속이고, 꾸준히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며 순간순간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 캐릭터였습니다. 관객이 쉽게 이입해서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목록까지 상상해서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실체가 있는 캐릭터였죠. 물론 울트론은 인간이 아니니까 그 매력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맹목성과 천진함, 그로 인한 공포감이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HAL처럼 아예 대사가 없었으면 그것도 꽤 재미있지 않았을지?

(소소한 기쁨을 잘 찾는 빌런)


그건 그렇고 1에서 진짜 볼거리가 내분이었던 것처럼 2의 하이라이트도 아이언맨과 헐크의 싸움이었다고 생각하니, 이 시리즈는 정말 내분의 이야기군요. 과연 타노스가 나오면 어떨지 기다려봅니다. 





덧글

  • 지녀 2015/05/14 12:38 # 답글

    언더 더 스킨은 배역을 위해서 일부러 몸을 불렸다고 하더군요.
  • 메모선장 2015/05/20 14:05 #

    어쩐지 묘하다 싶었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waterwolf 2015/05/14 23:49 # 답글

    내년에 나올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내분은 어느정도 정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어벤져스 3에선 정말 우주적인 스케일로 정신없이 얻어터질텐데.... 그 와중에 내분같은게 나올리가 없겠죠.
  • 메모선장 2015/05/20 14:07 #

    그렇군요. 타노스처럼 절대적으로 강한 상대를 만나면 뭉치겠군요. 그와중에도 티격태격하는 정도는 있겠지만 그때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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