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슈팅 게임의 성공적인 보드게임화 - 켐블 폭포의 전투 메모선장의 보드게임 이야기



*켐블 폭포
Kemble’s Cascade는 북쪽 하늘의 기린 자리 옆에 위치한 성군으로, 20개 이상의 별이 보름달 너비의 약 5배 길이에 걸쳐서 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레트로풍 음악과 함께 즐기시면 좋습니다. 다음은 스팀에서 유명한 레트로풍 액션 게임 They bleed pixels 사운드트랙입니다)



*레트로 슈팅 게임의 컨버전
켐블 폭포의 전투는 스웨덴의 형제 디자이너 Anders Tyrland, Olle Tyrland의 2014년작으로, 커버 이미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먼 옛날의 8비트 레트로 슈팅 게임을 보드게임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실시간으로 순발력과 암기력을 발휘해서 즐기는 슈팅 게임을 턴제 보드게임으로 만든다는 건 당연히 불가능한 것으로 느껴집니다만, 해 보니 아주 훌륭하게 구현되어 있었습니다. 


(스크롤에 사용되는 다섯 줄의 보드. 적기와 장애물이 끝없이 쏟아진다)

*화면 스크롤의 구현
일단 이 게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보드가 다섯 개의 플라스틱 판으로 분할되어 있다는 겁니다. 슈팅게임 하면 한 방향으로(주로 위에서 아래로) 스크롤되며 적들이 나타나는 스크린이 떠오르는데, 바로 이걸 구현하는 인터페이스입니다. 카드로 랜덤하게 나타나는 적들을 보드에 배치하고,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맨 아랫줄을 버리고 맨 위로 옮겨서 새 카드를 배치하는 것이죠. 이 아이디어 자체보다는 이 귀찮은 인터페이스가 그렇게 귀찮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감탄스러웠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각자의 우주선을 갖고 랜덤으로 구성된 이 보드를 누비며 적들을 공격하고 돈이나 승점을 모으게 되는데, 최종 목표는 물론 카드가 다 떨어져서 보스가 나온 이후 스크린까지 줄어들어 한 줄만 남았을 때 가장 많은 승점을 모으는 것입니다. 

*라운드 
게임은 여러 라운드로 이루어지는데, 매 라운드 플레이어는 두 장씩 갖고 있는 센서 카드 중 한 장을 동시에 내서 거기 적힌 숫자 순서대로 턴을 진행합니다. 단순히 생각하면 높은 숫자를 내서 무조건 먼저 움직이면 그만이 아닌가 싶은데, 적이나 다른 플레이어 때문에 길이 막히기도 해서 그때그때 적당한 숫자를 내야 하더군요.

*전투
자신의 턴에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간단합니다. 전투를 하거나 정비를 하면 되는데, 전투를 선택하면 우선 이동과 공격 기회가 주어집니다. 순서는 상관없고 기본 공격은 피해가 1, 기본 이동은 8방향으로 1칸입니다. 만약 행동을 더 하고 싶다면 오버차지라고 해서 에너지(체력) 1을 지불하고 이동이나 공격을 한 번 더 할 수 있습니다. 행동을 추가로 한 번 더 하고 싶으면 에너지 2를 지불하고 두 번째 오버차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공격해서 카드에 표시된 적에게 그 에너지만큼 피해를 입히는데 성공하면 적을 파괴하고 돈이나 승점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파괴한 적은 센서카드 덱에서 카드를 가져다 뒷면으로 덮어둡니다. 뒷면이 우주 배경으로 되어 있으므로 그러면 깔끔하게 적이 사라집니다. 적에게 피해를 누적해서 토큰으로 표시하는 방법이나, 적 토큰을 올려뒀다 치우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었을텐데, 한 턴만에 잡고 카드로 가리는 방식을 택해서 굉장히 깔끔하고 저렴하게 구현한 셈입니다.
플레이어는 이렇게 매 턴 어디로 움직여서 누구를 무엇으로 공격하는 것이 가장 덜 위험하고 가장 높은 승점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혹은 다른 플레이어의 앞길을 막아버릴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서 움직이게 됩니다. 그래서 테마는 슈팅게임이지만 실제로는 떨어지는 블록을 격파하는 퍼즐 게임이나, 여러 기물의 사선 속을 누비는 추상 전략을 즐기는 듯한 느낌도 들더군요. 그리고 이런 게임들의 특성상 장고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른 플레이어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대기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정비
정비를 택하면 에너지 2를 회복하고 상점에서 업그레이드 카드나 파워업 카드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무기의 방향을 정하는 포탑이나 엔진, 쉴드, 관통형 무기, 폭발형 무기등을 사고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장비를 갖춰가는 것만 해도 대단히 재미있습니다. 파워업 카드는 카탄의 개발카드처럼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효과가 적힌 카드들인데, 꼭 사야 한다기 보다는 게임을 다채롭게 하는 양념인 셈입니다. 

(업그레이드로 엔진과 무기를 강화한다)


*탄막 액션의 구현
그리고 어떤 행동을 택하든 플레이어는 “위협”이라는 것을 처리해야 하는데, 이건 말하자면 우주선에 날아오고 있는 총알을 표현한 시스템입니다. 매 턴 위협만큼 에너지를 잃고, 매 턴 주변의 적이나 장거리 공격 아이콘 하나마다 위협도가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동을 할 때마다 1씩 낮출 수 있죠. 즉, 매턴 총알이 날아오고 이것을 피해서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슈팅게임을 기막히게 구현해 놨죠. 

이런 식으로 라운드를 진행하면 나오는 적들은 점점 강해지고, 마침내 맵 전체를 차지하는 거대 보스가 나오는 것, 그리고 죽으면 잠깐 무적 상태가 되는 것까지 슈팅게임의 왕도를 철저히 고증해 둬서 슈팅 게임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게임에서 이기든 지든 감탄할 수밖에 없더군요.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거대 보스의 등장)


*최신 보드게임으로서의 시스템
이 정도만 해도 수작인데, 켐블 폭포의 전투는 최신 보드게임으로서도 제법 충실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일단 게임 중 달성해야 할 개인 미션을 하나씩 받고 시작하고, 항상 업적 카드 넷이 공개되어 있어, 일부러 적기에 부딪치거나 맨 윗줄에서 위협을 받는 등 단순 이동과 공격을 벗어나 다양한 점수 획득 방법을 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당연히 플레이어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누가 더 많은 공을 세우나 건전하게 겨룰 것 같은데 실제로는 여차하면 서로를 쏴댈 수 있다는 겁니다. 예, 이 게임에서는 PVP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플레이어를 공격하면 무기의 공격력만큼 위협도를 올리고, 자신의 PVP마커를 하나 줍니다. 이후에 어떤 플레이어가 죽으면 다른 플레이어는 모두 기본으로 2점을 받고, 자신이 줬던 PVP마커 하나당 1점을 더 받게 됩니다. 그래서 선의의 경쟁 관계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누가 비실거린다 싶으면 몰려가서 두들겨 패는 흉악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죠. 이 덕분에 공격할 적이나 갈 곳이 없다고 따분해할 틈이 없습니다. 언제나 공격할 대상이 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공격이 직접적인 사망 요인이 되진 않는데다가 죽는다 해도 게임에서 나가는 게 아니라 무적 상태로 쇼핑을 하고 돌아오기 때문에 치명적인 방해가 되지는 않고, 또 정비 액션을 하면 PVP마커는 다 반환하게 되어 있어 견제가 적을 무시하고 서로 치고 박을 정도로 강조되지는 않았습니다. 

(편대 비행을 하며 멋지게 보스를 쓰러뜨리는 모습 같지만, 실제로는 잔혹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


*정리
레트로 슈팅 게임의 구현이라는 점을 떠나서라도 조립형 보드에, 적은 매번 무작위로 나오고, 돈을 모아서 장비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으며, 미션과 업적, 특수 카드가 있고, 플레이어간 직접 견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당장 솔깃한 조합입니다. 그리고 켐블 폭포의 전투는 이런 시스템을 테마에 맞게 아주 잘, 더할 나위가 없이 멋지게 버무려 두었죠. 여기에 장비 구입 순서, 조합을 바꿔보는 재미나, 매번 달라지는 맵을 공략하는 재미, 그리고 플레이어끼리 서로를 견제하는 재미가 상당한 리플레이성을 보장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이게 아마 협력 게임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매력적이진 않았겠죠. 그리고 엄청나게 달라지는 게 없더라도 일정한 규칙 안에서 구현되는 무작위 결과를 처리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퍼즐적인 재미도 이 게임을 두고두고 할만한 게임으로 만들어주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8비트, 레트로, 슈팅, 퍼즐, 업그레이드, PVP, 우주, 이런 키워드들이 마음에 든다면 해보실만한 게임입니다. 

*아쉬움
각 오브젝트가 사선을 막느냐 막지 않느냐, 일부러 부딪칠 수 있느냐 없느냐 등 잔룰이 좀 있습니다. 레퍼런스를 따로 넣어준 이유가 있더군요.
보스가 4종 뿐인데, 카드만 추가하면 보스 확장은 간단할 것 같습니다. 확장팩을 기대합니다. 
Z맨 게임즈에서 종종 저지르는 짓인데, 마커를 제외한 컴포넌트 질이 상당히 나쁩니다. 막말로 졸리 게임보다 조금 나은 정도입니다. 특히 작은 카드 사이즈가 규격 사이즈보다 조금씩 커서 맞는 프로텍터를 구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 한편 프로텍터가 맞는 큰 카드들은 프로텍터를 씌워두면 빛을 반사하는 통에 차라리 프로테터를 쓰지 않는 게 낫지 않나 고민중입니다. 





덧글

  • 시로 2015/02/05 18:23 # 답글

    어엇 이거 엄청 재미나보이네요?
    룰이라던가 한글화 자료 있으려나...
    정보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 메모선장 2015/02/11 14:07 #

    보드라이프에 한글화 자료와 제가 대충 번역한 매뉴얼이 있습니다.
  • 인곤君 2015/02/05 18:26 # 삭제 답글

    준비해주신 BGM을 들으며 리뷰를 봤더니 지름효과가 두배로 오는군요.
    맨 윗칸 꽉 채운 보스 사진에 압도됩니다. 으아 멋지다....
    게임 내의 밸런스라던가 이런 부분만 확실히 검증되면 꼭 갖고 싶습니다
    (보기만 번지르르하고 막상 해보면 재미없다던가 하지만 않으면요)
  • 메모선장 2015/02/11 14:10 #

    매니아층에서 대중적인 유로게임 스타일이 아니라 호불호는 갈릴 것 같습니다만, 이런 게임에 대한 향수가 전혀 없는 사람을 제외하면 아주 싫어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비교적 유용한 무기가 있긴 하지만 결정적인 밸런스 문제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또 밸런스 문제가 대두될 시스템이 아니기도 하구요.
  • 별소리 2015/02/05 22:06 # 답글

    오호, 정말 시스템이 흥미롭네요!
  • 메모선장 2015/02/11 14:10 #

    컨셉을 보고 감탄하고, 해보고 또 감탄했습니다.
  • 인곤君 2015/02/13 11:06 # 삭제 답글

    으아아, 글 말미 '아쉬움'에 쓰여있는 [각 오브젝트가 사선을 막느냐 막지 않느냐] 라는 말을 보고 사선을 멋대로 diagonal line으로 생각한 후에, 메뉴얼을 읽으면서, 어라.. 대각선 못쏘는거같은데 뭐지?? 대각선으로 쏘는 특수장비가 있나? 하고 한참 삽질했네요. 射線이군요 ㅠㅠㅠㅠ 아 이렇게 멍청할수가.
  • 메모선장 2015/02/18 14:58 #

    앗차, 제가 헷갈릴만한 표현을 썼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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