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보드게임 후기: 발키리 스트라이크, 루이나스, 해저탐험, 삼천세계, 그녀의 카레라RS, 범인은 춤춘다 메모선장의 보드게임 이야기


1. 발키리 스트라이크 Valkyrie Strike


페어리테일 초판을 제작한 유호도의 2013년작으로, 미소녀 발키리들이 드래곤 요르문간드를 두드려 잡는다는 내용의 덱빌딩 게임입니다.

카드의 자원은 돈과 전투력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것들을 사용해서 궁극적인 승점이 되는 요르문간드 덱 맨 윗장을 전투력으로 잡아야 하는데, 카드 공급처가 정확히 돈을 주는 카드들, 전투력을 주는 카드들로 나뉘어 관리되고, 요르문간드 덱의 진행 상황에 따라 각 플레이어가 턴에 할 수 있는 추가 액션이 생긴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어  1단계에서는 1원을 더 받고, 2단계에서는 손에서 카드 한 장을 제거할 수 있고, 3단계에서는 카드 두 장을 뽑고 두 장을 버릴 수 있다는 식이죠.

그리고 자기 턴에 요르문간드에게 피해를 주는 데 실패하면, 즉 승점 카드를 사지 못하면 전투력만큼의 추가 승점카드를 따로 받을 수 있다는 게 대단히 흥미로웠습니다. 카드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효율 좋은 승점 카드를 사지 못해도 나름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노력한만큼 보상받는 게임인 셈입니다. 

또 매 턴이 끝날 때마다 요르문간드가 공격해서 공급처 맨 앞 카드가 사라지고 다른 카드가 공급된다는 점도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매번 카드를 채우는 게 귀찮긴 했지만 이것으로 그다지 사고 싶지 않은 카드가 쌓이는 현상이 해소되기도 했고, 또 이로 인해서 두 종류의 카드가 한 번씩 다 떨어지면 게임이 종료된다는 종료 조건이 되기도 했습니다. 

추후에 일종의 시나리오처럼 요르문간드 이외에도 다른 몬스터가 추가될 것 같은데, 그런 몬스터 팩에 따라서 게임 양상이 여러가지로 변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저가 몬스터를 자작하는 것도 쉬울 것 같구요. 아주 특별할 건 없지만 그런 변화 가능성이 특히 마음에 들더군요.



2. 삼천세계의 새를 죽여 그대와 늦잠을 자고 싶어 三千世界の烏を殺し、主と朝寝がしてみたい

“삼천세계의 까마귀를 죽여 그대 곁에서 자고 싶어”는 “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라는 유언으로 유명한 일본의 유신지사 다카스기 신사쿠가 남긴 시입니다. 일본 시에는 원래 흥미가 있어서 이에 대해 검색을 좀 해봤는데,  여기서 삼천세계란 1000의 3승 개의 세계, 즉 온 우주를 뜻하는 불교 용어라는군요. 그리고 어째서 닭이 아니라 까마귀인가 조사해 보니 나름대로 사연이 있었습니다. 

당시 유녀들이 단골을 만들기 위해 '유녀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하고 맹세하는 증서를 쓰곤  했는데, 이 서약서를 주로 부적 뒤에 썼답니다. 그리고 이때 영험하게 여겨진 부적이 기슈지방의 구마노 신사 것이었고, 여기서 모시는 신의 사자가 바로 까마귀였던 것이죠. 그래서 서약을 어기면 까마귀가 죽는다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이 시는 쉽게 생각할 수 있듯이, '새가 지저귀는 아침이 오면 떠나야 하는 게 안타까우니 온 세상의 까마귀를 죽이겠다'는 게 아니라, "당신이 약조를 모두 어겨 온 세상의 까마귀가 죽더라도 그대 곁에서 자고 싶어."라는 뜻이라는군요. (참조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다룬 라쿠고(일종의 1인 만담)도 있습니다. 산마이키쇼(서약 세 장)라는 제목으로, 내용은 이렇습니다. (참조)

밤놀이에 빠져 지내는 B에게 A가 그만 정신 좀 차리라고 하고, B는 나는 이런 약조도 받았다고 서약서를 보여줍니다. 그러자 A도 똑같은 서약서를 보여주며 그건 진심이 아니라고 현실을 알려줍니다. 그 자리에 C가 나타나 또 서약서를 자랑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진 셋은 A의 주도로 그 유녀를 놀려주기로 합니다. B와 C가 숨은 방에 A가 유녀를 부르는 것이죠. 불러서 B의 서약서에 대해 따지니, 유녀는 그런 놈에게 서약서를 써줄리가 있느냐며 B를 흉봅니다. 그러자 숨어있던 B가 나타나 C의 서약서에 대해 따집니다. 이번에도 유녀는 시치미를 떼며 C를 욕합니다. 이번에는 C가 나타납니다. 그러자 유녀는 '유녀는 손님을 속이는 게 일이고 속는 게 바보'라고 오히려 세게 나옵니다. 
-예로부터 서약서에 거짓말을 쓰면 구마노의 까마귀 세 마리가 죽는다고 했어.
-오호호, 저는요, 온 세상의 까마귀를 죽이고 싶은 걸요.
-까마귀는 죽여서 어쩌게?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싶어요.

여기선 다카스기 신사쿠의 로맨틱한 원작을 거꾸로 뒤집어 시끄러운 까마귀를 모두 죽이고 혼자 느긋하게 쉬겠다는 유녀의 재치를 드러내고 있군요. '까마귀를 죽인다'는 표현의 뜻은 옛날에도 오해하기 쉬웠던 모양입니다. 물론 까마귀를 모두 죽이고 그대와 아침까지 오붓하게 쉬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한다고 낭만이 깨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무튼, 이 시를 모티브로 한 이 게임은 komakiss 또는 roy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는 부부 디자이너에 의해 만들어졌고, 2014년 일본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캠프파이어를 통해 모금 및 제작되었습니다(http://camp-fire.jp/projects/view/1126). 펀딩 페이지에 가 보니 아내분께서 직접 분장하고 보드에 들어갈 게이샤의 사진을 찍은 모습도 나와있어 멋지더군요.

배경 이야기가 장황했습니다만 게임 자체는 굉장히 단순했습니다. 샤미센 카드, 새 카드 두 종류의 카드가 사용되며, 일정 장수의 새 카드를 받아서 자기 앞에 깔아두고, 샤미센 카드를 받아 손에 들고 시작합니다. 테이블 가운데에는 메인보드라고 해서 단계별로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새의 장수를 나타낸 목제 보드와 이것을 가리는 보드가 놓입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어제 가장 늦게 잔 사람이 선이 됩니다. 

자기 턴이 되면 새 세 장을 뽑아서 앞에 깔고, 샤미센 두 장을 뽑아서 손에 든 뒤 샤미센 카드를 원하는 만큼 사용해서 자기 앞의 새를 처리하게 됩니다. 새를 죽이기도 하고, 다른 플레이어에게 보내기도 하고, 새 카드 덱 맨 윗장을 뽑아서 같은 것들을 한 번에 모두 죽이기도 하죠. 이런 식으로 새를 처리한 뒤, 턴을 끝낼 때 자기가 가진 새가 메인 보드에 나와 있는 제한보다 적으면 살아남습니다. 같거나 많으면 게임에서 탈락하죠. 그래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게 목적입니다. 

그런데 게임을 진행하다 새 카드 덱에서 ‘종’이 나오면 메인보드의 단계가 진행돼서 갖고 있을 수 있는 새의 제한이 점점 빡빡해집니다. 처음에는 까마귀만 제한하는데, 뒤로 가면 휘파람새, 닭 등도 제한에 걸리죠. 게다가 새 중에서 박쥐는 카드로 없앨 때 대체로 우선적으로 없애야 해서 게임을 더 골치 아프게 만듭니다. 

사실 여기서 더 설명할 게 없을 정도로 간단한 게임입니다. 플레이어에게 ‘새’라는 난관이 주어지고 이것을 해결할 수단으로 ‘카드’들이 주어집니다만 각각의 난관은 플레이어의 플레이를 제한하거나 지속적인 손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계속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절대적인 문제일 뿐이고, 수단 역시 특별한 상황에서 응용하는 재미는 적은 편이라 전반적으로 ‘내가 이걸 이렇게 잘 해서 이겼구나’라기 보다는 ‘운 좋게 내 턴을 넘기고 나니 남들이 알아서 죽었다’는 식이었습니다. 

요는 플레이어가 선택할 게 거의 없고 카드 운으로 진행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꼭 뭘 건설하고 전략적인 선택을 하고 추리를 해야만 좋은 게임인 것은 아니죠. 독특한 테마의 가벼운 재난 서바이벌 게임으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배경이 되는 얘기가 더 재미있긴 합니다만.



3. 루이나스 Ruinous






영화나 애니메이션, 만화 중에는 등장인물이 정체 불명의 미궁에 갇힌 상태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제법 있는데, 루이나스도 비슷한 설정입니다. 플레이어들은 랜덤으로 조합된 맵에서 게임을 진행하며 모노폴리처럼 이 맵을 순회해서 운명 토큰을 모으는 것이 목적입니다. 플레이어의 말은 커스텀 다이스로 되어 있는데, 기본적으로 갖고 시작하는 카드 능력으로 턴을 시작할 때 주사위 눈을 바꿀 수 있고 이동시에는 딱 이 주사위 눈만큼 전진합니다. 전진 도중에 다른 말을 지나칠 때 전투력이 상대보다 높다면 운명과 의지 토큰을 빼앗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동력이 높으면 전투력이 약하고, 전투를 회피하는 눈이나 반격하는 눈도 있어서 이 주사위 눈 변환이 굉장히 중요하더군요. 게임을 시작할 때 각 칸 마다 카드를 깔아두는데, 이동이 끝나면 그곳의 카드를 얻거나 의지 토큰을 둘 얻을 수 있습니다. 카드를 얻어도 보유하려면 의지토큰 둘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이것도 카드의 포기 시점을 잘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바깥 쪽과 안쪽으로 나뉜 보드 중 안쪽에는 ‘영맥’을 만들 수 있는 칸이 있는데, 의지 토큰을 지불해서 자신의 영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영맥에 따라 승점도 오르고, 카드의 효과도 강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보드를 돌면서 싸우기도 하고, 카드를 사서 장비하기도 하고, 영맥을 만들기도 하는, 익숙한 모노폴리식 전개에 전투와 아이템을 덧붙인 게임이었습니다. 


일단 그림도 멋지고 구성품 수준도 굉장히 훌륭해서 감탄했습니다. 게임을 할 때마다 보드와 사용 아이템이 달라지는 방식도 제작비 때문에 자주 제작으로는 쉽게 구현하기 힘든 것이라 놀라웠구요. 주사위를 굴리지 않고 계획적으로 이동력을 설정해서 움직이고 전투를 한다는 것도 신선했고, 아이템 조합에 따라서 빨리 돌아 승점을 모으느냐 전투하고 의지를 모아 영맥을 사느냐 하는 방향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게임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끝나서 이렇다할 전략을 써먹어볼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전투라는 것도 말이 전투지 보통 센 쪽이 별다른 판정도 없이 깔끔하게 빼앗아 가는 방식이라 좀 심심한 감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석연치 않은 구석은 있지만 한 번만에 평가하기에는 흥미로운 요소도 많고 공을 들인 흔적도 많아서 몇 번 더 해보며 연구해 볼만한 게임이었습니다.



4. 해저탐험 Deep Sea Adventure

마스크멘, 맨덤의 던전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 오잉크 게임즈, 사사키 준의 최근작입니다. 
구성품은 주사위와 타일, 마커가 전부로 무척 깔끔한데, 플레이어들은 잠수부가 되어 해저에서 보물을 건져와야 합니다. 게임을 시작할 때 보물 토큰을 레벨별로 이어서 깔아두고, 플레이어는 잠수함에서 시작해서 자기 턴에 내려갈지 올라갈지 결정한 뒤 주사위를 굴립니다. 도착한 곳 보물 토큰이 남아 있다면 이것을 가질 수 있고, 가진 자리에는 빈칸 토큰을 놓습니다. 도착한 곳이 빈칸이라면 갖고 있는 보물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보물을 모으는 게 목적인데 보물을 왜 내려놓느냐구요? 그 이유는 꽤나 현실적입니다. 보물을 들고 잠수함으로 돌아와야 자기 점수가 되는데,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 그만큼 이동력이 줄어들고, 턴을 시작할 때 산소를 소모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특히 무서운 것이, 이 산소는 잠수함의 공용 산소라서 누가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모두가 촉박해지고 조금이라도 욕심을 부렸다간 잠수함에 돌아올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건 좀 아닌데 싶으면 기껏 먹은 보물도 버리고 올라와야 하는 것이죠. 그렇지만 보물의 레벨별로 점수 차이가 상당해서 큰 보물 하나만 먹으면 게임에서 거의 이겼다고 봐도 좋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깊이 깊이 잠수하게 되더군요...

구성품도 간단하고 디자인도 깔끔하며 플레이 인원도 3~6으로 폭이 넓은데다 게임 시간도 짧고 룰도 대단히 직관적이라 그야말로 누구나 재미나게 할 수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산소 소모량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어서 어느 시점에서 절대 돌아올 수 없다는 예측이 가능하다는 게 좀 아쉽기도 하고 비슷한 계통으로 “잉카의 황금”이 이미 있기도 합니다만, 보물을 끌어안은채 주사위를 굴려 살아서 돌아올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사투를 벌이는 스릴이 각별하고, 산소를 까먹으면서 남들을 괴롭힐 수 있는데 그게 그리 밉지 않고 재미있다는 점이 이 게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견줄 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휴대성은 말할 것도 없겠죠.



5. 그녀의 카레라 RS 彼女のカレラRS

"그녀의 카레라"는 일본의 만화가, 애니메이터인 아사미야 키아의 동명 원작을 배경으로 한 Product Arts, 사카우에 다카시의 2014년작입니다. 예전에 흥미롭게 했던 Birth도 이 분의 작품이더군요. 그리고 카레라 RS는 포르쉐의 모델명입니다.

원작의 내용처럼 '레이싱’을 다루고 있는 이 게임은 놀랍게도 트릭테이킹으로 진행되는데, 게임을 해 보니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메카닉이 뜻밖에 테마와 잘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게임은 1에서 5까지의 카드(4는 두 종류입니다)와 스피드 칩, 연료 칩, 승점 칩으로 구성되어 있고, 플레이어는 게임을 시작하면 카드 6장과 연료칩 5개를 받습니다. 그리고 선부터 카드를 한 장씩 냅니다. 이때 카드에 적힌 숫자가 자신의 속도가 되는데, 여기에 연료칩을 추가하면 속도를 그만큼 높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이 낸 색깔을 따라가야 하는 트릭테이킹과 달리 여기선 이미 앞에서 나온 카드를 낼 수 없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따라서 앞에서 가장 높은 수인 5를 내버리면 그보다 낮은 4를 내고 연료를 사용해야만 하는데, 4와 5라고 무조건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1이 나오면 모든 4와 5의 값이 0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죠. 

그럼 1이 다 사용된 시점에서 4와 5를 쓰면 안심이겠군요? 그런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플레이어는 도저히 낼 카드가 없을 때, 혹은 자기의 판단에 따라 카드를 뒤집어 낼 수도 있어서 어떤 카드가 얼마나 사용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요는 절대적으로 강한 카드가 없어서 매번 긴장해야 하는 것이죠. 믿을 수 있는 것은 확실한 ‘칩’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칩은 매 라운드 똑같이 공급되는가? 그것도 아닙니다. 연료 칩은 사용하면 공급처로 돌아가는데, 저절로 채워지는 법이 없고, 딱 두 가지 방법으로만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나는 카드 2를 사용하는 것. 그러면 공급처의 연료 하나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카드를 뒤집어서 내는 것, 그러면 트릭이 끝났을 때 카드를 뒤집어 낸 사람끼리 공급처에 모인(이전 트릭에 사용된) 연료칩을 나눠 갖습니다.

그리고 속도를 높여주는 칩으로 '스피드 칩’이 또 있는데, 이것은 트릭에서 승리할 때마다 가져옵니다. 즉, 이길 수록 점점 유리해진다는 것이죠. 그렇게 게임을 진행해서 한 라운드의 마지막 트릭인 여섯 번째 트릭에서 승리하면 승점 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으로만 봤을 때는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수많은 트릭테이킹 게임 중 하나로 보이긴 합니다만, 실제로 해보면 이게 퍽 긴장감있는 카드관리와 자원 관리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일단 뒤에서 무슨 카드를 낼 지 모르는 상황에서 카드를 써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보충하기 어려운 연료까지 써야 합니다. 그런데 연료를 몇 개나 써서 얻는 스피드 칩이 과연 그 연료들보다 값진 것인가 생각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스피드 칩 하나에 연료 두 개 쯤 남은 상황보다는 스피드 칩이 없어도 연료가 네다섯 개 있는 상황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적당한 타이밍에 쉬어서 카드도 관리하고 연료도 잘 채워야 하는데, 흥미롭게도 이 연료의 상한선이 고작 다섯 개인데다가 넘치면 나머지 칩은 게임에서 제거해버리고, 나눠 가지고 남은 것도 게임에서 제거해 버립니다. 결국 게임 후반이 될 수록 전체 연료가 줄어들어 게임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것이죠. 

처음에는 테마만 레이싱일 뿐이고 어쨌든 트릭테이킹이겠지 싶었는데, 게임을 하면서 갈수록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상대가 체크 포인트를 하나씩 클리어하면서 우위를 점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풀스로틀로 역전하는 레이싱 게임의 재미가 살아있더군요. 이니셜 디 사운드트랙까지 틀어놓고 하니 장고하면서도 박진감이 넘쳤습니다. 지금까지 해본 트릭테이킹 게임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게임으로 뽑고 싶군요.



6.범인은 춤춘다 犯人は踊る
일본의 유명 드라마/영화 “춤추는 대수사선”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게임은 나베노기카쿠, 나베노페스의 2013년작으로, 카드로 이루어진 간단한 추리 게임입니다. 

인원에 따라 기본 카드 조합에 나머지 카드 몇 장을 무작위로 섞어서 4장씩 나눠주고 시작하며, 자기 턴에 할 일은 카드 한 장을 쓰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만, 모두가 카드 한 장을 왼쪽으로 돌리거나 다른 플레이어와 교환하거나 다른 플레이어의 카드를 보는 등 여러 효과를 쓰다가 전체 카드가 줄어들면 누군가 탐정 카드를 사용해서 범인 카드를 가진 사람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범인 카드를 마지막 카드로 사용하는 사람이 나오면 범인이 승리하고, 탐정이 범인을 맞추면 탐정이 승리하는 것이죠. 기본은 이렇게 간단한데 그밖에 알리바이 카드로 탐정이 지목했을 때 거짓말을 하거나 공범 카드로 범인과 같이 승리하는 등 재미난 요소가 많아서 범인 카드가 어디로 갔나 추적하는 것 외에도 궁리할 게 적지 않습니다. 자기 손에서 범인 카드를 주고 ‘범인은 당신이야, 왜냐하면 내가 범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지!’라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나오긴 합니다만 그것도 재미있고, 또 추리에 실패한다고 땅을 치고 후회할만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 가볍게 부담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낙서같은 느낌의 일러스트도 무척 귀엽고 좋더군요.



7.디씨코믹스 덱빌딩 게임 DC Comics Deck-Building Game(이건 물론 일본 게임이 아닙니다)
크립토조익 엔터테인먼트의 2012년작인데 이제야 해봤습니다. 각 플레이어는 디씨코믹스의 슈퍼히어로가 되어 게임을 진행하며, 자기 턴이 되면 공급처의 카드를 사거나 슈퍼빌런 덱 맨 윗장을 두들겨 잡으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쓰긴 했지만 이 게임에서는 돈과 공격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결국은 다 구매더군요. 덱빌딩 게임의 효시인 도미니언에서는 액션 기회, 구매 기회를 나눠놓고 승점을 사면 살 수록 덱의 효율이 낮아진다는 제약을 걸어뒀지만 여기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카드가 있으면 무조건 다 쓸 수 있고, 파워가 있으면 뭐든 때려잡고 살 수 있습니다. 빌런을 가져와서 덱에 넣어도 나름대로 그럴듯한 능력이 있어서 빌런을 잡는 게 딱히 손해가 되지도 않습니다. 요는 강한 카드를 사서 파워를 높이고, 높은 파워로 슈퍼 빌런을 때려잡으면 그만이라는 겁니다. 도미니언의 등장 이후로 수많은 게임이 공격력이나 액션 등을 따로 분리하고 직접 상호작용의 밸런스를 어떻게 잡을까 고민해왔는데 어센션부터 그런 고민은 집어치우고 마음대로 하는 쪽이 대세가 된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도미니언처럼 그때그때 정해진 카드를 사서 덱을 정확히 원하는 방향으로 꾸리는 걸 더 좋아하지만, 이런 방식도 시원시원해서 좋습니다. 

그러나 물론 시원시원하다고 아주 생각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테마에 맞게 시스템도 궁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일단 슈퍼히어로마다 고유 능력이 있어서 여기에 맞는 덱을 만들어가야 하고, 카드마다 다른 플레이어를 조금씩 방해하는 것들도 있으며, 슈퍼빌런은 등장할 때마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카드를 버리게 하거나 약점 카드를 먹게 하거나, 슈퍼 히어로 능력을 봉인하는 등 재미난 이벤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래봤자 어차피 슈퍼히어로에게 두드려 맞는 신세라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만.


(한국어 제목은 임의로 번역한 것으로 타 사이트, 블로그, 혹은 추후 발매될 정식 제목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덧글

  • 2015/02/05 14:0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메모선장 2015/02/11 14:04 #

    죄송합니다. 저도 없습니다.
  • 디굴디굴 2015/02/06 04:33 # 답글

    야아 이건 오랜만의 대량 후기로군요. 저도 요즘 귀찮아서 잘 못 쓰는데....

    집에만 있다보니 너무 편해져서 그런가.... (응?)

    어쨌든 잘 읽었습니당!
  • 메모선장 2015/02/11 14:04 #

    저도 요즘은 점점 귀찮고 피곤해집니다..
  • 디굴디굴 2015/02/11 17:55 #

    아, 앙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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