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착한 집정관 나쁜 집정관 - 프리터 메모선장의 보드게임 이야기

프리터: 로마집정관 Praetor

프리터는 Andrei Novac의 2014년 작으로, 제목인 프리터는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취직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먹고 사는 사람 Freeter”이 아니라 국내출시명에 표시된 대로 “고대 로마의 집정관Praetor”를 의미합니다. 후자가 아니라 전자였어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제목이 아니었겠는가 싶긴 합니다만.

아무튼 프리터는 로마를 배경으로 한 문명, 도시 건설 게임으로, 각 플레이어는 자원을 모으고 건물을 짓고 이것을 이용하여 승점을 벌고 시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게임으로서는 특이하게도 카드 한 장 없이 타일과 일꾼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꾼은 일반 마커가 아닌 주사위로 되어 있습니다.

보통 주사위라면 당연히 굴려서 무작위의 값을 구하는데 사용하기 마련입니다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고 일꾼의 경험치를 표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경험치 1로 시작해서 건설이나 자원 수집을 하면 할 수록 경험치가 늘고, 이 경험치에 따라 그 효율이 느는 것이죠. 그리고 경험치가 6이 되면 은퇴까지 합니다. '일꾼이 일하다 늙어 죽는' 게임인 “빌리지”에 이어 드디어 '일꾼이 성장하고 은퇴하는' 게임까지 등장한 것이죠. 

아무튼 이 새로운 일꾼 시스템은 그것만으로도 꽤 흥미롭고 적응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경험치가 높은 일꾼을 써야 한 번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그러다보면 일꾼이 은퇴해버려 액션 기회가 줄어들죠. 따라서 새 일꾼을 고용해야 하는데, 일을 잘 하는 일꾼을 굳이 아끼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또 일꾼을 빨리 은퇴시키면 그만큼 승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재미난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일꾼을 지속적으로 고용하는 한편으로 능숙한 일꾼을 부려먹고 자르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현역 일꾼은 물론 은퇴한 일꾼도 급여를 받거든요. 요는 ‘가르쳐서 일 좀 잘 한다 싶으면 나가서 연금만 받아먹는’ 상황이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급여를 주지 못하면 시민의 행복도가 떨어지고, 행복도가 바닥이 되면 점수가 뭉텅이로 깎이기 시작하죠. 여기서 행복도는 점수와 직결되는 데다가 한 칸을 진행할 수록 그 점수 차가 커져, 플레이어는 도시 건설 뿐만 아니라 어떻게 일꾼들에게 급여를 챙겨주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인지, 즉, 복지까지 신경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한편으로 도시 건설과 전반적인 게임 진행은 굉장한 특징 없이 무난한 편입니다. 매 라운드 플레이어보다 한 장 더 많은 건물 타일, 그리고 성벽 타일 하나가 공급되며, 플레이어는 자기 턴에 자원을 내고 일꾼을 보내 이것을 건설하거나 일꾼을 보내 이용합니다. 건설한 타일은 기존 타일에 붙여서 놓는데, 이때 기본 건설 점수에 덧붙여 각 타일 귀퉁이의 색깔과 인접 타일의 귀퉁이 색깔이 맞는 만큼 추가 점수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타일을 어디에 붙일지 약간 생각해서 건설하게 되는데, 그 결과 구성되는 보드는 너무 길어지지 않고 적당한 직사각형을 구성합니다. 특출나게 재미나거나 전략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건설된 타일을 이용할 때는 건설한 플레이어에게 일정량의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케일러스”나 “로즈 오브 워터딥”에서 대체로 자원을 주는데 비해 여기선 돈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점이 아쉽더군요. 건물주가 다양한 자원을 받게 될 경우에는 자신이 어떤 건물을 건설해서 이후로도 큰 힘 들이지 않고 두고두고 이득을 얻는 기분이 들기 마련인데, 이것이 돈으로 일원화되니 그것이 자신의 고유한 건물, 개발한 능력의 일종이라는 보람은 약한 편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기분일 뿐이고 실제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나의 돈이 상대에게 넘어가는 것이라 실제 금전 차이는 적혀 있는 것의 두배가 되고, 또 자원 구입, 임금 지불 등 다양한 면에 돈이 사용되므로 이 금전 지불은 일종의 액션 포인트의 양도로도 간주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본 규칙은 이렇게 간단한데, 각 타일의 기능과 일꾼, 행복도 시스템이 맞물려 몇가지 전략을 짜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꾼을 최대한 늘리고 일꾼의 수에 따라 점수나 돈을 받는 방법, 자원을 긁어모아서 닥치는 대로 건설하고 건물의 수에 따라 이득을 얻거나 보유 자원에 따라 승점을 받는 방법, 건설할 때마다 승점 증가폭이 누적되는 성벽을 독점하는 방법, 행복도를 최대한 올리고 행복도로 점수를 받는 방법, 선 발전 후 분배, 균형 성장 등등, 방향을 설정하고 그때그때 최대한의 이득을 얻는 방법을 궁리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지만 다른 일꾼 놓기 게임들에 비하면 상당히 드라이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손에 카드를 감추고 있다가 남을 골탕 먹이거나, 자기만의 특별한 능력을 활용해서 이득을 짜내거나, 퀘스트를 달성하거나, 어떤 트랙에서 남과 경쟁해서 특권을 얻거나, 리스크를 무릅쓰고 주사위를 굴려 큰 이득을 따내거나, 다른 플레이어들의 의식의 틈새를 파고들어 신의 한 수를 두는 등의 재미는 없고 모든 정보를 공개한 채로 도시를 관리하는, 무척 적응하기 쉽지만 이리저리 뒤집히는 의외의 요소 없이 극히 냉철하고 이성적이라 요행으로 이기기는 어려운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점을 좋아할 사람은 퍽 좋아하겠지만, 심심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심심하다고 여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법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원을 지불하지 않고 점수를 몇 점이든 얻을 수 있는 플루투스의 신전, 머큐리의 신전 때문에 모든 플레이어가 자원을 닥치는 대로 긁어모으고 쓰지 않는 기현상이 일어났을 때는 요상하다 싶었고 기본 타일에 프로모션 타일까지 추가하니 게임이 3시간 넘게 이어졌습니다만, 공식 패치에서 이 신전들로 얻을 수 있는 승점은 22점으로 제한되었고, 짧은 게임 규칙을 적용해서 성벽 타일을 몇 개 제거하고 세팅하니 세 명 한 시간 반으로 끝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플레이어 보드를 뒷면으로 해서 각각 다른 수치로 시작하니 그 수치에 맞는 운영 방향을 찾아내는 재미도 훌륭하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복지는 무슨 복지! 국가가 먼저 일어서면 국민도 저절로 행복해지게 되어 있어!”, “월급 없어! 월급 안 주면 너희가 뭘 어쩔 거야?"나 “우리는 유럽 복지국가야,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최고지.”, “기껏 키워 놓은 놈들은 다 나가서 연금이나 받아먹고, 새로 뽑은 놈들은 일은 못 하면서 월급이나 받아먹고….” 등 시류에 맞는 헛소리를 하며 경영자로서 몰입하는 재미는 다른 게임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프리터는 분명 딱 한 번 해보고 이건 기막힌 걸작이라는 말이 나올만한 게임은 아닙니다. 일꾼 놓기 게임이긴 하지만 그동안 각광 받아온 게임들과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죠. 카드도, 종교 트랙도, 퀘스트도, 선적도, 거래도, 이벤트도, 텍스트도, 주사위 굴림도 없습니다. 이건 요즘 전략 게임으로서는 차,포,상,마 다 떼었다고 봐도 좋을 텐데, 그럼에도 프리터가 매력적인 게임인 이유는 게임의 중심에 놓인 '숙련되고 은퇴하는 일꾼 시스템'이 그 자체만으로 독특한 게임성을 갖추고 있고, 이를 통한 개인 보드의 경영이 한 국가로서의 기본적인 내러티브를 형성하기 때문일 겁니다. 

결론적으로 양념이 심심한 감이 있고 건설로 얻는 이득이 좀 적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기본룰이 매우 간단하면서 이기기는 어렵고 경영의 재미가 있다는 점에서 전략 게임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와 익숙한 플레이어가 동등한 선에서 즐길 수 있는 전략-건설-경영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덧글

  • 엘레시엘 2015/01/07 18:02 # 답글

    Praetor는 법무관. 집정관은 Consul임다. 근데 게임 내용을 보면 쓰신대로 '집정관'이 더 어울릴만한 제목이긴 하네요.
  • 메모선장 2015/01/14 16:32 #

    그렇군요! 그런데 왜 굳이 프리터로 정했는지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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