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배든 짧은 배든 만들어 보자 - 노티커스 메모선장의 보드게임 이야기


노티커스 Nauticus 


노티커스는 볼프강 크라머와 미하엘 키슬링 콤비의 2013년작으로, 배를 만들고 상품을 선적해서 납품하는 과정을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각 플레이어는 개인보드 창고와 돈, 일꾼을 가지고 시작하며, 선 플레이어는 자신의 턴이 되면 중앙 보드에서 원형으로 놓인 액션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수행합니다. 이후 돌아가면서 선 플레이어가 선택한 액션을 수행할 수도 있고 수행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 시스템은 푸에르토 리코, 산후앙, 레이스 포 더 갤럭시에서 톰 레만이 선보인 것과 거의 동일합니다. 특히 액션을 선택한 선 플레이어는 추가적인 이득을 얻는다는 것까지 같죠. 
하지만 물론 다른 점도 적지 않은데, 일단 이 액션이 놓이는 칸에는 액션의 비용과 선택시의 이득이 적혀있고, 액션 타일 안 쪽의 휠 타일에는 액션의 횟수가 적혀 있으며, 이것들이 라운드마다 각각의 규칙에 따라 무작위에 가깝게 세팅되기 때문에 같은 액션도 굉장히 이득이 될 때가 있는가 하면 영 신통치 않을 때도 있습니다. 또 액션을 하지 않으면 라운드마다 앞면으로 놓이는 -1~-3까지의 감점 타일 중 하나를 뒤집어 감점을 피할 수 있게 되어 있어, 플레이어가 액션의 가치를 평가하면서 적절히 패스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 플레이어가 액션을 하나씩 선택하고 라운드가 끝나는 게 아니라 8가지의 액션 중 7가지를 수행하면 끝납니다. 전체적으로 푸에르토 리코에 비해 각 액션에 대한 옵션이 많이 붙어있어 뭘 얼마나 해야 할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액션의 종류는 다음과 같고, 구매 액션의 공짜 수행 횟수는 액션 타일 안쪽의 휠 타일에 파란 일꾼 모양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보다 많은 횟수를 수행하려면 추가로 일꾼 마커를 사용해야 합니다. 

선체 구매, 돛대 구매, 돛 구매
배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구성물로는 선체, 돛대, 돛 세 가지가 있고, 당연히 어느 한 가지도 생략할 수 없으며, 선체는 1칸에서 4칸으로 구성할 수 있습니다. 배를 이루는 타일은 최소 3장에서 12장입니다. 타일을 사오면 자기 앞의 빈 공간에 내려놓는데, 몇 개의 배를 동시에 건조해도 무방합니다. 다만 한 번 놓은 타일을 움직일 수는 없고, 한 배의 돛대와 돛은 모두 동일한 마크를 가진 것이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완성한 배는 크기에 따라 게임 종료 후 점수가 되는데, 이 점수는 2, 8, 20, 35로 크기에 따른 차가 굉장히 큽니다. 그리고 배를 완성하면 즉시 보너스를 받습니다. 크라운 돛대, 크라운 돛, 승점 3점, 7원, 일꾼 3, 상품 2종 중에서 완성한 배의 돛대마다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상품을 팔아서 돈을 받는 방식도 아니고 일반 액션으로 받을 수 있는 자원의 양도 상당히 박한 편이라 이 보너스는 자원을 수급하는 주요한 수단이 됩니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점수용 거대 선박을 만들어나가는 한편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소규모 배도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하더군요. 

상품 구매
상품은 4종이 있는데, 구매하면 완성되었든 완성되지 않았든 배의 선체 한 칸 아래 한 장을 실어놓을 수 있고, 이후 배가 완성된 상태라면 판매 액션으로 팔 수 있습니다. 

구매 액션은 이렇게 네 가지인데, 액션 타일이 무작위로 배치되면서 각 타일의 가치도 변하는데다가 한 종류를 여럿 사려면 추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뭘 얼마나 살 것인지, 배를 확장할 것인지 새 배를 만들 것인지 여러가지 적절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상품 판매
상품 판매라면 당연히 상품을 팔아서 돈을 받을 것 같지만 노티커스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상품 판매라기보다는 하선에 가깝고, 원하는 만큼의 배에 실린 상품을 뽑아서 점수 계산에 포함시키는 액션입니다. 상품 하나를 하선하기 위해서는 일꾼 하나가 필요한데, 어느 배에서 뭐 하나만 내리는 방법은 불가능하고 한 배에 실린 상품을 모조리 내려야 하기 때문에 그리 만만한 작업은 아닙니다. 게임이 끝나고 계산하는 상품 점수는 한 종류를 많이 모을 수록 점수가 높으므로, 한 종류를 빠르게 모으는 데는 작은 배가 오히려 나을 것 같더군요. 

수송
창고에서 타일을 꺼내는 액션입니다. 게임 내내 공짜로 받은 타일은 무조건 창고로 들어가게 되어 있고, 이것을 꺼내려면 수송 액션에서 타일 하나 당 일꾼 하나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공짜라고 신나서 받아도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죠. 

돈 받기
자신이 가진 일꾼 하나 당 2원을 받는 액션인데, 푸에르토 리코에서 광부가 떠오르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돈은 주로 배 완성 보너스로 충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리 푸코의 광부처럼 그리 인기 있는 액션은 아니었습니다. 

크라운 평가
다른 액션들과 달리 승점으로 직결되는, 상당히 차별적인 액션입니다. 게임 중 배 완성 보너스로 왕관이 그려진 크라운 돛, 크라운 돛대를 받을 수 있는데, 이것들은 아무 배에나 사용할 수 있는데다 크라운 평가 액션에서 승점을 줍니다. 이 왕관 문장은 각 플레이어가 가진 세 장의 감점 타일 뒷면에도 나와 있는데, 크라운 평가 액션을 통해 일꾼 마커 하나를 사용하면 자신이 소유한 모든 왕관 문장 하나당 1점을 즉시 얻을 수 있습니다. 한 번의 액션으로 얻을 수 있는 점수는 15점으로 제한되어 있긴 하지만, 작정하고 왕관을 모으는 플레이를 하면 상당히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더군요.


이렇게 여덟 가지 중 일곱 가지의 액션을 하고 나면 라운드가 끝나고 액션 타일을 새로이 세팅하여 다음 라운드를 진행합니다. 2인 플레이의 경우 4라운드, 그 외의 경우 5라운드를 진행하고 게임은 끝납니다. 게임이 끝나면 완성한 배, 판매한 상품에 대해 점수를 계산하고, 각자가 가진 나머지 타일, 일꾼은 하나당 1원으로 환산하여 3원 당 1점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계산한 총점이 가장 높은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승리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잔 룰도 거의 없고 쉽고 깔끔하며 진행도 빠르고 게임 시간도 1시간 반 정도로 짧은 게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일꾼 마커와 상품이 등장하긴 하지만 일꾼 배치도 상품 수송 게임도 아니라 누가 먼저 뭘 하느냐 고민할 일도 없고 뭘 어디에 얼마에 팔아서 얼마를 벌겠다는 계획을 세우거나 특별한 건물을 세워서 기능을 활용하고 이득을 보는, 최신 전략 게임 풍도 아닌 편안한 게임이었습니다. 요는 같은 종류의 타일을 모으기 힘든 상황을 잘 극복하고 최대한 많은 세트를 구성하는 셋 컬렉션 방식인데 그 테마와 시스템이 대단히 세련된 게임입니다. 볼프강 크라머와 미하엘 키스링 콤비는 많은 작품에서 액션 포인트를 사용하는 시스템을 채용해왔는데, 노티커스에서는 ‘일꾼’이라는 형태로 채용되긴 했으나 사실상 단순한 자원에 가까워 다른 작품에 비해 압박감은 덜했습니다. 다른 액션 포인트 게임에서 흔히 그러듯이 여기서 이걸 하고 저기서 저걸 한다는 식으로 계획을 딱 세워놨다가 삐끗해서 무너지는 절망감을 느끼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각 플레이어는 게임 중 한 번 추가 액션 타일을 사용해서 추가 일꾼을 받고 원하는 액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을 벌여놓고 마무리를 못해서 통탄할 일도 없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안전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게임이 재미가 없거나 머리를 쓸 일이 적은 것은 결코 아니라, 매번 뭘 얼마나 수행하고 무엇을 사서 몇 칸짜리 배를 만들지 고민해야 했고, 또 만들어놓은 배가 그걸로 끝이 아니라 상품 선적과 판매에 쓰여 '전반의 선택이 후반의 플레이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전략 게임의 명제도 어느정도 달성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요즘 들어 해 본 게임들 중에서는 드물게 깔끔하고 압박감이나 상호 견제를 작정하고 유발하지 않으며, 덱빌딩이나 일꾼 배치, 스케줄 등 특출나게 재미난 시스템 없이 오래된 시스템을 멋지게 다듬어 편안하고 재미나게 만들었구나 싶은 게임이었습니다. 온갖 신비한 특수 능력과 절묘한 테크트리, 깜짝 놀랄만한 시스템도 좋지만 전략 게임의 근본적인 재미는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다는 걸, 노티커스를 해보고 다시 한 번 떠올려 봅니다.  


(*예전에 간략하게 써둔 걸 정리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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