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지컬 스퀘어 코멘터리 02. 언어와 기억 메모선장의 보드게임 이야기

콘셉트가 처음 정해졌을 때는 무작위 블록을 생성하는 도구로 6면체 주사위를 썼습니다. 블록의 종류는 숫자 그대로 결정 되었습니다. 일반 퍼즐 게임처럼 색깔을 쓰면 더 직관적이고 "숫자"를 기피하는 분들도 좋아하실 수 있을 거고 연령층도 더 넓어지겠지만 "연속된 것들에도 특수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숫자의 장점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플레이어가 색깔을 기록할 방법도 없었죠.  6색 볼펜 같은 걸 들고 색을 바꿔가면서 할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세모, 네모, 동그라미 등 기호를 쓰는 방법도 있긴 했지만, 이건 "언어와 기억"이라는 복잡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블록을 바로 화면에 띄워주는 게임이거나, 블록을 직접 손에 들고 맞추는 게임이라면 이런 문제가 없습니다. 기억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색깔"이라는 아주 편리한 요소가 적용되어 있죠. 실제로 우리가 블록류 퍼즐 게임을 할 때는 모양보다는 색깔로 인식합니다. 즐겨하는 퍼즐 게임이 있다면 각 블록의 색깔과 모양을 떠올려 보십시오. 모양이 전부 떠오르나요?

하지만 매지컬 스퀘어는 나온 블록이 무엇인지 일단 기억한 뒤에 표를 보고 머릿속으로 맞춰봐야 하는 게임입니다. 따라서 모양이 나오면 "세모, 네모,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 세모" 처럼 중얼거리며 기억해야 하는데, 이 "모양에 대한 명칭"이 지나치게 길고 직관적이지도 않습니다. ‘세네동’ 식으로 줄이면 좀 낫겠지만, 블록의 종류를 늘리면 문제가 심각해지죠. 동그라미, 엑스, 세모, 네모, 오각형, 육각형… 각이 늘어나면 그냥 숫자로 기억하겠죠. 게다가 오각형과 육각형을 순식간에 명확히 구분되도록 기록하는 것도 몹시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스페이드, 다이아몬드, 하트, 클로버, 물결, 십자 따위를 쓰면 순서도 없어지고 기록도 번거로워집니다.

그리고 단어의 길이가 사고의 속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죠. 때문에 도형을 사용하는 것은 이 게임의 인터페이스를 파괴하는 선택지였습니다. 사고 과정은 물론이고 기록마저 느리니까요. 

그에 비해 아라비아 숫자는 완벽히 명확하고 기억과 인식이 훨씬 쉽습니다. 특히 한국어 환경에서는 모든 숫자가 단음절으로 발음되어 복잡한 체계의 복수 개체라면 숫자가 다른 어떤 기호보다 빨리 처리됩니다. 연구에 따르면 6을 ‘리우’라고 연음으로 발음하는 중국어도 숫자 하나를 발음하는데 단 0.25초 가량이 걸린다고 합니다. 따라서 기억도 선명하고 기호로서 혼동할 이유도 없죠. 6과 9가 헷갈릴 수 있지만, 매지컬 스퀘어에서는 9가 나오지 않으니까요. 

사실 서양어 사용자에게는 숫자가 약간 불리하긴 합니다. 서양어에서는 숫자를 발음하는 음절이 길죠. 그래서 알파벳도 시험해보긴 했습니다. ABC, CAD, DGF… 나쁘진 않았습니다. 음절도 짧죠. 하지만 표에 늘어놓고 보니 숫자에 비해 난잡해보였습니다. 적어도 한국인에게는 숫자보다 직관적이라고 할 수 없었죠. 그리고 당장 해외진출을 노리고 만드는 게 아니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데 굳이 쉬운 길을 놓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스마트폰을 국내에서만 다운그레이드해서 발매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최종적으로 숫자로 확정했습니다. 매지컬 스퀘어가 아주 흥하면 나중에 원소를 알파벳으로 바꾼 버전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만, 그건 김칫국 마시는 소리겠죠.

 

(코멘터리는 추후 연재됩니다)

 

텀블벅 페이지에서 이밖에 일러스트 제작 과정과 현황에 대한 소식도 접하실 수 있습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