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웍 개발에 대한 코멘터리(3)(完) 메모선장의 보드하우스

(3)


마지막 대안


카드 교환이 번거롭다는 문제는 제작과 판매와 배포와 스핀오프 게임 제작 후에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슬슬 테스트하기도 힘들었죠. 여러 명이 필요한 데다 사실상 하나의 테스트 그룹에서 룰을 조정해가면서 수십 번을 한 탓에 이제 게임을 꺼내기도 민망할 지경이었으니까요. 한국에서 보드게임이 이렇게 사랑받는데도 대작이 쏟아지지 않는 이유는 시장 규모나 자본 문제보다는 이 '좋은 테스트 그룹의 부재'가 가장 크다고 봅니다. 

아무튼 마지막 대안이 테스트 된 것은 2012년 8월 쯤이었습니다. 혼자서 팀을 이루면 12와의 차만큼을 점수로 받는다는 것인데, 간신히 테스트 해보니 다른 어떤 대안보다 나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낮은 숫자라도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많아지고, 높은 숫자는 반드시 팀을 이뤄야 하므로 자신이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다른 플레이어에게도 좋은 점수를 줘야 한다는 딜레마가 성립했습니다.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했을까 싶은 방법이었죠. 


아무튼 이 규칙으로 정식 업데이트를 하기를 바랐는데, 9월에 중고거래를 하던 중 우연히 팀웍을 재미있게 하고 있다는 분을 만났습니다. 부산에서 보드게임방 비슷한 것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학생들이 항상 찾고 재미있게 하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만든 게임을 즐기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팀웍을 학생들이 재미있게 할 거라는 제 예상은 어느정도 맞았던 셈이죠.

기쁨은 잠시 뒤로 하고, 마침 좋은 기회였으므로 이 분께 다음 패치를 먼저 테스트 해 주실 것을 긴히 부탁드렸습니다. 하지만 이 분께서는 지금 규칙으로 굉장히 재미있게 하고 있으니까 룰을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결국 규칙이 번거롭다는 분도, 만족스럽다는 분도 있는 셈이었고, 저는 어느 쪽을 만족시킬 것인지 선택해야 했고, 결국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마치며


팀웍을 만들면서 느낀 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철저한 계산에 의한 게임을 원하고, 누군가는 승부를 떠나서 웃고 떠드는 게임을 원하죠. 팀웍은 트릭테이킹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어느 쪽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개발 기간 내내 어느 쪽에 무게를 줘야 하는가 헤맸던 것 같습니다. 역시 특수 카드를 포함시키고, 드라이한 게임은 어드밴스 룰로 따로 뺐으면 일이 간단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 게임이 제작된지 한참 지난 지금에 와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리고 모임에서 하우스 룰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나 하우스 룰 소개 같은 것들을 보면 게임이 이미 제 손을 떠나 사람들이 나름대로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하우스 룰이 만들어진다는 것 자체가 현대 상업 보드게임으로서 규칙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긴 하지만, 팀웍이라는 게임이 제가 구현하고자 했던 기본 개념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플레이 된다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좋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팀웍이 매니아들 사이에는 자리하기 힘들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몇 번을 플레이 해도 새롭게 탐구할 전략이 떠오르는 걸작은 아니니까요.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아마 흔히 브릿지 게임이라고 분류하는 미니 게임들 중 하나라고 인식되었을 겁니다. 발매한지 한참 지난 지금쯤이면 아마 구매한 분들도 까맣게 잊어버렸겠죠. 

그러나 자신할 수 있는 것은, 팀웍이 수많은 게임들 사이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잃지 않고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해에도 수많은 게임들이 등장하고, 이 사이에서 잊히지 않으려면 고유의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팀웍은 간단한 현실 반영으로 그런 개성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팀웍이 받는 사랑이 얼마나 많거나 적은지 저로서는 알 수 없지만, 그럴 수 있었다는 데에서 만족합니다.   


아무튼,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만들어진 팀웍은, 철저히 보드게임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을 요구하지 않도록 디자인되었고, 조별로 평가를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습니다.  어쩌다 가끔씩 보드게임을 잘 모르는 분들과 시간을 보낼 일이 있을 때 즐겨주신다면, 디자이너인 저로서는 더이상 바랄 게 없겠습니다. 



2013.03.28.

메모선장.





덧글

  • 가까이서 2013/04/21 01:22 # 삭제 답글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아직 직접 해 보지는 못했고 룰만 읽어본 상태에서 말씀드리자면 "12와의 차"보다는 지금 그대로의 룰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설정된 상황(테마)에도 어울리고요. / 국외에서도 발매되면 좋겠습니다~ ^^
  • 메모선장 2013/04/24 21:06 #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의견도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국외 발매라... 그럴 날이 언젠가 오면 좋겠네요:)
  • retera 2013/04/24 13:11 # 답글

    조금 다른 얘기지만 하우스 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디자이너가 제안하려고 한 룰보다 현재 즐기는 룰을 선택한거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하우스룰 비슷한 것 같아요. 다른 집단의 사람들과 즐기게 되거나 제작자를 존중한다거나 혹은 막연한 이유로 하우스룰은 기피해왔는데 즐기는 사람들이 재미있다면 역시 뭐 상관 없는거겠죠?
  • 메모선장 2013/04/24 21:08 #

    디자이너가 의도하려던 근본적인 개념이나 의도를 충분히 알았다면 그 뒤에는 어떻게 즐기든 구매자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사무라이를 금은동 룰로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 갈기머리 2013/04/25 14:31 # 답글

    저도 같이 작업했지만 대안 룰에 대해 많은 후보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메모선장님의 의욕을 알 수 있었네요. 디자이너 에디션 중에서도 팀웍은 인기가 있는 편입니다. 물론 정식 제품이 아니라 판매 루트가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요.
    팀웍은 저 또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게임입니다. 해외 퍼블리셔를 만나면 종종 소개하곤 하지요. 팀웍 관련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다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게임을 할 때 하우스룰로 즐기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매뉴얼이란 것은 일종의 레퍼런스라고 생각하거든요. 게임의 참여자가 모두 합의한다면 하우스룰도 게임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죠.
  • 메모선장 2013/04/29 17:16 #

    나름 인기가 있다니 기쁩니다. 아무튼 고생해서 게임을 내주신 갈기머리님께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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