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웍 개발에 대한 코멘터리(2) 메모선장의 보드하우스

(2)


일러스트레이션


11월쯤에는 후배에게 의뢰해서 일러스트 작업을 했습니다. 물론 그림을 그냥 달라고 한 것은 아니고 대가는 지불했죠. 그런데 이 친구가 그때는 컬러링을 잘하지 못해서 일러스트는 러프 스케치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카드 디자인은 레포트 용지에 낙서를 한 듯한 느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일러스트 위치에 맞춰 숫자의 위치도 조절했죠. 레베카(2)가 들고 있는 종이에 이것 저것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작업한 제가 말하는 것도 뭣하지만 일러스트도 꽤 멋있게 나왔고, 레이아웃도 괜찮지 않나 싶어요. 

하지만 문제가 없지는 않은 게, 그때는 지금보다 포토샵에 능숙하지 않아서 선이 좀 겹친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 숫자의 컬러링이 잘못되었습니다. 색깔을 많이 쓰다보니 비슷한 색이 겹쳤던 거죠. 나름대로 분간이 잘 되는 걸 고른다고 골랐는데, 모니터와 제 프린터가 달랐고, 인쇄한 제품이 또 달랐습니다. 결과물은 정말 좀 어두운 곳에서 구분하기 힘들더군요. 제보를 받은 뒤에서야 트럼프처럼 숫자 아래 모양을 따로 넣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플레이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고, 이런 저런 사정도 있어서 그대로 출시되긴 했지만, 구매하신 분들에게는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계속되는 룰 수정


골자는 항상 그대로였지만 11월 쯤부터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11월 30일에는 3인플 규칙을 완성했죠. 3명이라고 2가지 색만 가지고 게임을 할 수는 없으니까 3가지 색을 쓰되, 일부 카드는 공개한 채로 플레이 해서 파티성을 줄이고 수싸움을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디자이너 에디션은 원래 2011년 1월 출시를 목표로 했지만 연기되면서 한동안은 팀웍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3월 14일에는 운 좋게 미군 한 명을 포함해서 테스트할 수 있었는데, 반응은 썩 괜찮았습니다. 그걸로 저도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죠.


5월쯤 해서 최종미팅 비슷한 게 있었는데, 그 뒤로 계산이 너무 번거로우니 수정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다시 나왔습니다. 게임을 하는 동안 카드 한 장 내면서 은근한 고민을 하게 되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카드 한 장씩 내고 바로 점수를 기록해야 하니까 누군가 한 명은 기록하느라 귀찮아진다는 것만은 사실이죠. 

그래서 이런 점을 보강하자는 몇가지 제안이 있었습니다. 팀원이 최소 몇 명이 되어야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방식, 평점이 가장 높은 팀이 카드를 한 장씩 가져가서 카드의 장 수를 점수로 사용하는 방식 등이 그것이었는데, 테스트해보니 점수를 받는 그룹이 되지 못하면 점수를 아예 받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간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가 원래 구현하고자 했던 풍경이나 컨셉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죠. 

그래서 저는 계산이 좀 덜 번거로운 룰을 따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게 바로 "어드밴스" 룰인데, 6월쯤 완성되었습니다. 


어드밴스 룰이 기존의 룰과 다른 점은 평점이 가장 높은 조에서 가장 낮은 숫자를 낸 플레이어가 다음 조장이 되고, 이 조장부터 다른 플레이어가 낸 카드를 골라서 자기 점수로 가져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카드를 가져가면, 그 카드를 낸 플레이어가 다음으로 카드를 가져갑니다. 따라서 조의 평점이 높으려면 높은 숫자를 내야 하는데, 이러면 조장이 될 수 없다는 딜레마, 그리고 낮은 숫자를 내면 차례가 늦게 와서 높은 숫자를 가져갈 확률이 낮아진다는 딜레마가 성립했습니다. 핸드를 다 쓰면 점수를 계산하는데,여기에 셋 콜렉션 개념도 추가해서, 이때 자기가 가진 숫자 총합에 모은 색깔의 종류를 곱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10번씩 적어야 하던 것을 2번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고, 게임도 썩 나쁘지 않았습니다. 딜레마는 훌륭하게 작동했고, 테스트 플레이어는 전보다 더 고민하게 되었죠. 하지만 이것이 정말 성공적인 개정이었는가 하면 그렇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조가 평점을 받는다"는, 단지 그 단순하고 현실적인 재미를 살리는 게 목적이었던 게임이 연구를 거듭하면서 점점 산으로 갔죠. 세발 자전거에 모터사이클 엔진을 단 것은 아니었나 싶습니다. 



레베카의 문제


어드밴스 룰을 만드는 한편으로 기본룰에서도 게임의 구조를 보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특수 카드가 사라진 뒤로 핸드가 전혀 보충되지 않으니까 의욕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왔을 뿐더러,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시작하자마자 높은 카드 많이 받은 사람이 옆에서 누가 달라 붙건 말건 결국 좋은 점수를 받고, 2를 많이 받은 플레이어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달라 붙다 지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카드 운이 나쁜 사람도 기회 혹은 기대감이라도 가질 수 있게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자동차를 튜닝할 때 엔진을 바꾸면 서스펜션 등 다른 부분도 밸런스를 맞춰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이 현상에 대해 초안 단계에서부터 대안은 있었습니다. 혼자 팀을 이루면 점수를 더 받는다는 게 그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4라도 운 좋게 혼자 내면 7점을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플레이어가 되어서 높은 숫자를 혼자 내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꽤 많은 안을 세워봤죠.

일단 우선적으로 적용된 게 2를 내면 다른 플레이어와 핸드 전체를 반드시 교환한다는 안이었는데, 이 안의 목적은 높은 카드를 아끼고 있다가 후반에 내는 경향을 없애고, 카드 운이 적용될 기회를 아예 대폭 늘려서 초기 핸드운이 의미를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테스트 결과 이 방법은 게임을 꽤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데 성공했고, 그래서 게임이 발매될 당시에는 이 규칙이 배포되었죠. 

하지만 곧 이게 너무 게임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들어왔습니다. 핸드 전체를 교환하다보니 카드 장수가 같아야 해서 대상에 제한이 생기기도 하고, 높은 카드 대신 낮은 카드가 후반에 몰려 나오는 현상이 일어났죠. 이 정도는 예상을 했어야 하는데 생각도 모자랐고, 이 버젼은 테스트도 많이 하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패치가 잦으면 잦을 수록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생각하게 되는데, 이때 그랬습니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채택된 것이 갈기머리님이 제안한 카드 한 장을 교환한다는 안이었는데, 결과부터 말하자면 아시다시피 이 안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도둑잡기처럼 카드를 서로 한 장씩 뺏고 빼앗기는 재미가 추가되기도 했고, 큰 숫자가 있어서 2를 사용하지 못하는 현상도 없어졌으며, 높은 숫자를 아끼는 현상도 초기에 목적했던 대로 비교적 줄었습니다. 

하지만 카드를 자꾸 교환하는 게 영 번거롭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었죠. 테이블 위로 자꾸 팔을 뻗어 카드를 주고 받아야 했으므로 솔직히 안그래도 좋지 않은 인터페이스를 더 귀찮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세련된 룰이라고 하기는 어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검토한 다른 대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가 하면, 


숫자마다 각각의 능력이 있다.

2를 내면 버려진 카드 중 하나를 가져올 수 있다.

한 트릭에는 플레이어의 반 수만큼의 색깔만 나올 수 있다.

패스할 수 있다. 패스하면 이전에 낸 카드를 이번에 낸 것으로 간주한다. 

2를 내면 이벤트 덱이 공개된다.

혼자서 팀을 이루면 12와의 차만큼의 점수를 얻는다.


등등이 있었습니다. 이 대안들에 대한 문제점을 굳이 다 분석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아무튼 이 안들은 2012년 7월까지 틈틈이 테스트해서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기각했는데, 마지막 남은 하나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가내수공업


2011년 10월 23일에는 피스크래프트에서 제품 조립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카드가 깔끔하게 종류별로 나와서 장 수를 맞춰 포장만 하는 게 아니었죠. 칼선이 들어간 카드를 펀칭하고, 이걸 분류부터 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노하우가 없었을 때 닥치는 대로 펀칭한 카드들은 한 장씩 주워서 분류해야 했기 때문에 중노동이 따로 없었습니다. "범죄 현장에 이 게임이 있으면 우리가 잡혀간다"는 말이 나온 게 이 때문입니다.  아무튼 허리를 두드리며 돌아오는 기분은 체험 삶의 현장 같았죠. 하지만 솔직히 다시 하고 싶지는 않군요. 



동영상


팀웍이 쉬운 게임이긴 하지만, 매뉴얼을 들이대고 소개하는 것보다는 역시 동영상으로 소개하는 편이 나을 게 분명했습니다. 뭐든 동영상으로 보는 시대니까요. 마침 아이폰 동영상 촬영 화질이 쓸만하기도 하고, 편집도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았으므로 2012년 1월 27일에 동영상 매뉴얼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제 컴퓨터 성능이 좋지 않아서 HD화질을 괜찮은 툴로 편집하기는 힘들더군요. 결국 윈도우즈 무비 메이커를 썼습니다. 



판매 개시


디자이너 에디션은 2012년 1월 26일 경에 보드엠에서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5월에 초안을 완성했으니까 제법 오랜 여정이었죠. 팀웍은 카드가 적어서 7000원이었는데, 품절과 재입고를 몇 번 거쳐서 2013년 3월인 지금까지 계속 판매되고 있습니다. 팔아주시는 분이나 사주시는 분이나 정말 감사드릴 뿐입니다. 




동네 페스타 무료배포


가내수공업으로 게임을 조립한 날 제 몫으로 받은 50팩이 있었는데,  사실 이게 처치 곤란이었습니다. 원래는 보드하우스에서 투고자들에게 보내주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이게 도통 투고가 들어오지 않는 방송이었거든요. 방송 더럽게 재미없다는 투고라도 하면 경품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그런 투고도 들어오지 않았고, 투고는 보내는 분만 계속 보내왔습니다. 결국 민망해서 경품 행사는 그만두고 이것들을 의미있게 소모할 방법을 생각해야 했죠. 

그래서 찾은게 '동네 페스타'였습니다. 동네 페스타는 만화-애니메이션 관련 동인 행사로, 간단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서브컬쳐쪽 2차 창작물을 만들어 파는 행사죠. 원래는 서드 플레이스라고 제가 게임을 팔기도 했던 행사가 있었는데, 이게 사라진 상태에서는 동네 페스타가 팀웍을 보내기에 가장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2012년 2월 1일에 주최측과 컨택했습니다. 팀웍의 일러스트가 만화적이기도 했고, 게임 내용도 참가자들의 연령대가 좋아할만했으므로 이야기는 순조롭게 성사되었고, 마침내 팀웍 30팩을 전달했습니다. 이렇게 기부된 패키지들은 4월 1일에 개최된 3회 동네페스타에서 추첨으로 배포되었습니다. 



팀 메이커


동네 페스타에서 게임을 배포하기에 앞서서 고려할 사항이 몇가지 있었습니다. 일단 카드게임을 덜컥 받았다고 게임을 안하던 사람이 매뉴얼을 찾아서 인쇄하고 갑자기 게임을 마구 하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매뉴얼을 인쇄해서 포장해야 했고, 인터넷의 자료에 대한 접근성도 가능한한 높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배포본에는 QR코드를 삽입했는데 이게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군요. 

그리고 2월 5일 쯤에는 사람들이 게임을 받아도 당장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팀웍은 다인원이 할 수록 재미있는 파티게임인데, 행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보통 많아야 세 명 정도가 일행이거든요. 어드밴스 룰에는 2인 룰이 포함되어 있지만, 사실 이건 2인이서 가능하다는 정도지 권장할만한 게임은 아니니까 게임을 받은 사람이 친구와 바로 게임을 해 볼 수 있으려면 새 규칙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또 새로운 규칙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팀웍 카드를 이용한 덱빌딩 게임 등 괴이한 게임도 검토되지만 최종적으로는 '팀 메이커'라는 2인 전용 스핀오프 게임이 완성되었습니다. 초안 완성이 2월 6일이니까 기본 규칙은 하루만에 만든 셈이군요. 아무튼 팀 메이커는 5색을 써서 6라운드를 진행하며, 매 라운드 테이블에 7장을 펼쳐서 번갈아가며 한 장을 갖거나 상대에게 줘서 색깔별 평점을 겨루는 게임인데,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수 싸움 게임으로, 금방 만든 것 치고는 썩 나쁘지 않았습니다. 2인 전용 게임이라 테스트하기도 간편해서 개발 과정도 팀웍에 비하면 고생을 덜 했죠. 몇가지 세세한 변형을 테스트해보고 매뉴얼 촬영과 발표를 마쳤습니다. 아무튼 팀 메이커의 완성으로 팀웍은 이제 부부끼리, 친구끼리, 애인끼리도 할 수 있는 패키지가 된 셈이죠.  




덧글

  • 가까이서 2013/04/19 01:44 # 삭제 답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게임이 탄생되기까지는 역시 지난한 과정이 있군요~
  • 메모선장 2013/04/20 09:21 #

    감사합니다. 마지막 3편도 올렸으니 마저 읽어주세요:)
  • 둥둥 2013/04/19 03:00 # 삭제 답글

    잘 봤습니다. 재미를 쫓는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 메모선장 2013/04/20 09:22 #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런 일들을 거쳐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는 건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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