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상아질은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다

꽤 전부터 이가 약간 신통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신 음식이나 초코바 같은 것을 먹으면 어금니쪽이 시려왔다.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걸까? 사실 그럴 확률은 낮다고 생각했다. 옛날부터 식사한 뒤에는 꼬박꼬박 성실하게 이를 닦고 있는 데다가, 일하는 동안 군것질을 하는 것도 아니다. 집안 대대로 치아가 엉망이라 어릴 때부터 양치에 대한 잔소리를 꽤 많이 들었고, 그래서 치아 관리에는 나름대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재작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충치 치료를 해봤을 정도다. 말하자면 치아적 우등생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니 재작년에 치과 진료 기록이 남고 말았다는 걸 보면 내가 뭔가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치아적 우등생으로서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어느새인가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르지. 타성에 젖었을 수도 있다. 내가 양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양치가 나를 하는 상황. 칫솔에 치약을 바르고 적당히 쑤셔댈 뿐인, 거품을 뱉는 것만이 목적으로 바뀐 듯한 양치. 과장하자면 그런 식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정성스럽게 이를 닦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그럭저럭 값이 비싼 시린 이 전용 치약을 사서 이를 닦기 시작했고, 그 덕인지 한동안은 괜찮게 되었다. 불소가 상아질을 코팅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이야기가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몇 주 전부터 증상이 재발했다. 또다시 치과에 가고 싶지 않았던 나는 양치를 더욱 가열차게 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증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진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어떻게 된 거지? 이럴 리가 없는데? 조금 더 열심히 했어야 했나? 하지만 더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버티기에는 위험한 시간이 찾아오고 있었다. 곧 장기간 한국을 떠나야 할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무려 12일에 걸친 여행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 기간동안 증상이 악화되어 이가 마구 아프기 시작한다면 이만저만 낭패스러운 일이 아니다. 아마 그것은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저주스러운 경험이 되리라.

그래서 망설이던 끝에 치과에 갔다. 아침 일찍. 재작년에 갔던 치과도 아주 나쁘지는 않았지만 멀쩡한 사랑니를 뽑으라고 종용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곳으로 갔다. 도착하고 보니 전에 간 곳보다 썩 넓고 깔끔한 곳이었다. 원장이 오기 전이라 간호사가 증상을 간단히 듣고는 기다리라고 했다. 아침 햇살이 따뜻한 테이블 앞에 앉아서 노트북을 꺼내 일기를 쓰다가, 원장이 온 뒤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편안하고 오싹한 의자에 앉아 입을 벌렸다. 적당히 나이가 있는 원장은 내 이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더니, 의자를 일으켜 세워 내 이빨 사진을 모니터에 띄우고는 간단히 설명했다.

단 것을 얼마나 먹고 안 먹고는 나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결론적인 부분만 말하자면, 치경부마모였다. 치아의 아래쪽, 잇몸과 닿는 부분이 닳아버렸다. 어금니 세 개의 치경부가 그꼴이 되어 신경이 민감한 부분이 드러난 것이다. 이를 잘못된 방법으로-특히 가로로 힘차게 문질러대서 생긴 증상이란다. 원장은 쇠막대 같은 것으로 잇몸을 눌러 시큰한 맛을 보여주며 환부를 확인하고는 설명했다. 굳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확인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싶었지만, 아무튼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마모된 부분은 자연회복 되지 않기 때문에 레진으로 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레진이라면 충치 치료 때 조사해봐서 대강 알고 있었다. 치아나 잇몸과 비슷한 색으로 만들 수 있고 이물감이 없는 데다 부착이 간편해서 널리 쓰이는 재료지만 결정적으로 보험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건 정말로 다른 선택지가 없는 문제였다. 누구 잘 보일 사람 없으니까 좀 추하고 싼 걸로 해주세요, 할 수도 없었고, 아, 그냥, 좀 시리다고 죽는 것 아니니까 그냥 갈게요, 할 수도 없었다. 치아 문제가 대부분 그렇듯이 저절로 나을 일은 없고 방치해서 증상이 악화되면 신경 치료까지 하느라 호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당장 치료하는 것이 가장 저렴하고 현명한 길이었다. 나는 맥없이 치료에 동의했다.

아말감으로 때우는 것과는 확실히 달라서, 잇몸에 레진을 부착하는데는 총 15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중에 발견한 곳 한 군데를 추가로 치료하고도 그 정도였다. 빠른만큼 감사하고 잘 된 일이지만, 어쨌든 나는 귀중한 휴일에 깨어나보니 하루가 이미 다 지나버렸을 때 느낄법한, 사소한 억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치료비는 할인해서 18만원이 나갔다. 내가 알던 시세보다 싸서 다행이다 싶은 한편으로, 정말로 중요한 뭔가를 어처구니 없이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저번 주에는 고작 2000원쯤을 아끼느라 인쇄소를 세 군데나 돌아다녔다. 그리고 취미생활에 도저히 20만원이나 되는 돈을 쓸 수 없어서 PS Vita도 포기한지 꽤 되었고, 핸드폰도 그럭저럭 나쁠 거 없지 하고 합리화하며 쓰고 있다. 그런 와중에 18만원이, 아침 햇살을 받은 물안개처럼 사라진 것이다.

더욱 억울한 것은 이 치아 문제가 나의 나태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재작년에 충치 치료를 한 뒤로 나는 이를 열심히 닦았고, 그리고 이상을 느끼기 시작한 후로는 더 열심히 닦았다. 다만 그 방법이 매우 잘못되었을 뿐이다. 오래 살자고 수은을 먹은 것과 비슷한 꼴이다. 말하자면 나태가 아니라 무식이 죄였는데, 왜 그 누구도 이를 가로로 닦아대면 치경부 마모라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것일까? 역시 20대 후반쯤 되면 30대를 대비해서 올바른 건강 정보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채널을 하나쯤 구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연애/섹스 칼럼도 재미야 있겠지만, 30대쯤 되면 상실한 뒤로 두 번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도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치아 건강이란 정말 오싹하리만치 중요한 것이다. 상어가 아니니까 한 번 난 영구치가 새로 날 일은 없다. 썩었다고 뽑아버리고 아, 내년쯤에는 새로 나겠지 뭐, 하고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다. 60년이고 90년이고 똑같은 놈을 망가지지 않게 잘 관리하며 사용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인체에서 가장 힘을 많이 받는 부위인 데다가, 시도때도 없이 산성물질 따위를 처바르는 마당에 자기 눈으로 확인하기도 힘들다. 그런 부분이 한 번 손상되면 절대로 스스로 회복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겨우 복구할 수야 있지만, 그건 결국 원본을 모방한 가짜에 지나지 않고,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겪고도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땜질한 것에 불과하다. 원래 ‘나’ 였던 부분을 잃고, 내가 아닌 것을 내가 잃어버린 부분의 모양으로 만들어 대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손상되지 않은 원래의 나는 영영 돌아오지 않고, 내 입안에는 느껴지지 않는 이물질이 자리하고 만다. 그리고 나를 대체하는 이물질의 비율은 앞으로 점점 늘어나겠지.

지우개 가루를 다져서 똥을 만드는 것보다도 빠른 치료가 끝난 뒤, 간호사는 다른 이상이 없느냐는 내 질문에 충치는 이제 거의 안 생길 것이고, 마모나 잇몸 문제로 올 일이 더 많을 거라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말은 마치 작은 상처를 받지 않는 요령은 늘었지만, 그 요령이 쌓여서 피할 수 없는 상실을 가져올 거라는 예언처럼 들렸다. 물론 치과 간호사가 그런 악담을 할 이유가 없으니 이건 순전히 내 확대해석이지만, 어쨌든 충치를 피하려는 노력이 잇몸을 갈아버린 것만은 분명하다. 제대로 된 방향도 모르고 하는 노력은 늘 이런 비극을 초래하고 마는 것이다. 좀더 일찍 제대로 된 방향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며칠 뒤, 스케일링을 받으러 갔던 어머니가 충치뿐만 아니라 치경부 마모까지 있어 50만원 가량을 썼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고 맙소사. 매일같이 건강 프로그램을 챙겨보는 어머니에게도 제대로 된 방향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다.



후기

최근에 개의 치아를 유전자 복제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말은 미래에 돈만 많으면 자기 이빨을 제조해서 심을 수 있다는 뜻이겠죠. 솔직히 그보다는 양치해주는 로봇이 먼저 나와주길 바라지만……. 아무튼 우리는 돈을 벌면서 미래를 기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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