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가는 필요없어

맨날 늙어서 어쩌니 저쩌니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남보다 젊은 감성을 유지하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터무니없이 안이한, 근거 없는 자만이고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다(엄밀히 말하면 몇 달 되었다).

후배들과 잡담을 하다 노래방에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것도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가서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 노래만 부르는, 한 때 유행했던 ‘토토가’를 하자는 것이었다. 졸업해서 뿔뿔이 흩어진 뒤로는 노래방 갈 일도 거의 없었으므로 그러기로 했다. 이 제안은 특히 내게 구미가 당길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란 내가 ‘최신 가요’ 같은 것은 도무지 듣지 않는 인간이라 다같이 옛날 노래나 부르면서 ‘아, 이 노래 진짜 오랜만이네' 같은 소리를 하면 생판 모르는 노래를 주구장창 들을 때보다 훨씬 흥겹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야기는 그대로 진행되었고, 대여섯 명이 노래방에 모였다. 그리고 노래가 시작된 지 그리 오래지 않아서 두 가지 문제를 깨달았다.

첫 번째는 내 레퍼토리가 사실상 애초부터 토토가에 근접한 수준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신곡’을 가장 활발하게 듣던 시기는 2000년대 초반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하던 시기라 CDP를 갖고 다니며 매일 음반 몇 장을 챙겨 핥듯이 듣고, 질린다 싶으면 새 음반을 사거나 이것저것 모아서 구워댔던 시기다. 그러다가 인권을 획득한 이후로 본격적으로 가요를 끊고 J-Pop이나 애니 삽입곡을 듣기 시작했으니, 지금 노래방에 가봤자 타임슬립으로 미래에 떨어진 사람처럼 비슷한 노래만 빙빙 돌려 부를 수밖에.

두 번째는 후배들의 ‘추억의 노래’ 레퍼토리가 나와 완전히 달랐다는 것이다. 물론 겹치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쿨’이나 ‘클론’ 처럼 알기 쉽거나 공전의 히트를 친 발라드 몇 곡은 괜찮았다. 하지만 후배들이 가장 신나게 부르는 것은 ‘슈퍼-쥬니어’, ‘빅-뱅’ 같은 아이돌 그룹의 히트곡이었다. 아이돌과는 그야말로 완벽하게 담을 쌓고 사는 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로 아이돌과 거리가 있는가 하면, 그나마 몇 명인지 아는 그룹이 소녀시대, 젝스키스, 신화, SES 정도인 수준이다. HOT도 핑클도 몇 명인지 헷갈린다. 3의 배수가 아니면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그러니 종종 들어본 것 같기도 하지만 잘은 모르는 노래들을 들으며 ‘다들 신난 것 같으니 다행이군’ 따위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제딴에는 비장의 수단이라고 '영혼기병 라젠카', ‘슬램덩크'처럼 국내 방영했던 만화영화 주제곡을 몇 곡 불러봤지만 이것도 터무니없는 실수였다. 도무지 흥이 나지 않았다. 친척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너바나를 부르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지만 그것도 잘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요즘에야 비슷한 작품들을 보고 지내니까 동시대 사람으로 지낼 수 있지만, 국내 방영작은 정확히 그 시기에 TV를 봤어야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다. 굳이 주제곡을 부를 거라면 ‘포켓몬’ ‘디지몬’ ‘나루토’ 등을 불렀어야 했다. 하지만 그건 내 시대의 추억이 아니다.

한날 한시에 노래방에 가도 품고 있는 추억은 서로 다르다


그리하여 요즘 노래 대신 옛날 노래로 추억에 젖어보자는 계획은 보기좋게 빗나가서 나는 개강 파티에 끌려온 지도교사 같은 느낌을 맛보고 말았고, 2000년대 중반의 애니 삽입곡으로 간신히 늙은이의 여명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젊게 사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가끔은 자신이 있는 위치를 확인하고 사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튜브에 누워 자다가 먼 바다에서 깨어나 ‘응? 여기가 어디야?’ 하듯 당황하는 사태에 직면하고 마는 것이다. 늙는 건 서럽지만 그걸 직시하지 않으면 더욱 서러워진다는 뜻이다. 정말이지 이래저래 나이 들어서 좋을 건 하나도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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